사라진 北의 금고지기, 김정은 비자금-무기밀매 깊이 관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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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엘리트 줄이은 탈북]39호실 유럽자금총책 망명

대동강돼지공장 시찰하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동강돼지공장을 시찰하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고기 가공품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고 말했지만 유럽 내 자금총책의 잠적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한국 입국 때문에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대동강돼지공장 시찰하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동강돼지공장을 시찰하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고기 가공품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고 말했지만 유럽 내 자금총책의 잠적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한국 입국 때문에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18일 망명 사실이 새롭게 알려진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책임자인 김명철(가명) 씨는 현지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노동당의 유럽 자금 관리를 책임지고 있지만, 그의 활동 범위가 서유럽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지냈던 국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던 한 탈북자는 “그 나라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오가기에 수월한 위치여서 당 자금을 벌어들이는 인물들이 가족을 현지에 정착시키고 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씨가 중동과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불법 거래에도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소식통은 “사건이 벌어진 국가 이름과 김명철의 본명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다만 김 씨는 현지에서 활동하며 ‘김명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탈출 동기는 지난해부터 북한에 거주하던 가족과 친지들이 숙청 대상이 되면서 신변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 씨의 두 아들은 해당 국가에 거주하면서 올해 초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둘째 아들은 1988년생으로 현지에서 다국적 인터넷 금융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씨 부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김 씨의 탈출로 유럽 내 모든 북한 공관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 특수요원들이 그가 접촉할 만한 선을 먼저 차단하느라 공작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김 씨가 도움을 요청할 만한 인물들에게 김 씨 명의를 도용해 ‘도와 달라’는 e메일을 무차별 발송하는 방식도 포함돼 있다. 김 씨가 진짜 도움을 요청해도 믿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 씨는 현재 제3국 망명을 희망하고 있지만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사례처럼 막판에 마음을 돌려 한국행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태 공사가 북한 외무성에서 유럽 외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만큼 김 씨 탈북 사건에 대한 책임도 무거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5월 방북했던 영국 BBC 기자가 김정은을 ‘뚱뚱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보도한 혐의로 북한 당국에 억류된 사건 때문에 당시 BBC 기자의 방북 문제를 담당했던 태 공사가 책임 추궁을 당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태 공사는 제3국에 가족을 남겨둔 채 영국을 떠날 만큼 탈북을 결행하는 과정이 긴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의 남겨진 가족은 제3국에 체류하던 딸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지도부가 거액을 갖고 탈북한 김 씨의 추적에 이미 나섰고 추가 탈북과 해외 주재원 동요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검열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태 공사 망명 이후 외교관 가족 소환령을 내리는 등 단속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태 공사 탈북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내에 입국을 했고 널리 보도가 돼 사실 확인 차원에서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의 일부가 제3국에 잔류하고 있는 상태인 만큼 정부의 발표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력 인사의 탈북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북한 체제에 구멍이 뚫렸다’ △‘붕괴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과오나 금전 문제(충성자금 미확보 등)와 같은 개인 차원에서 탈북을 결심하는 것이지 아직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탈북한 사람은 3만 명 정도”라며 “과거 동독에서는 불과 5년 동안 15만 명이 탈출한 적도 있지만 냉전이 해체될 때까지 동독은 건재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러시아에서 망명한 김철삼 주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가족은 최근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숭호 shcho@donga.com·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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