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등급 늘고 낙제는 줄어… 국민체감과 너무 다른 성적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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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경영평가]“좋은게 좋은것” 점수 후하게 주고
경영성과-혁신 미진한 공기업은 ‘벼락치기’로 평가점수 끌어올려
E등급 기관장 해임건의 대상인데 ‘취임 6개월 미만’ 이유로 모두 제외
‘퇴출 기관장 0명’ 평가이후 처음

공기업은 총수입 중 사업을 통한 자체 수입의 비중이 절반 이상인 기관. 준정부기관은 자체 수입 비중이 절반 이하로 기금 관리 등 정부 기능을 위탁받은 기관. 강소형기관은 준정부기관 중 정원이 500명 미만인 기관. 자료: 기획재정부
공기업은 총수입 중 사업을 통한 자체 수입의 비중이 절반 이상인 기관. 준정부기관은 자체 수입 비중이 절반 이하로 기금 관리 등 정부 기능을 위탁받은 기관. 강소형기관은 준정부기관 중 정원이 500명 미만인 기관. 자료: 기획재정부
“이제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게 됐습니다.”

16일 경영평가 결과를 받아든 한 공기업 임원은 전년보다 올라간 등급에 만족해했다. 2014년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이 공기업은 지난 1년간 평가등급을 끌어올리는 데 회사의 역량을 쏟아부었다. 이 회사는 경영평가 6개월 전부터 핵심 인재들을 뽑아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후 경영평가단의 성향을 분석하고, 지난번에 평가를 잘 받은 기관을 찾아가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아예 두 달 전부터는 TF 직원들이 야근과 합숙을 밥 먹듯이 하며 평가단에 제출할 보고서 작성에 매달렸다.

지난해 116개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 결과 해외 자원 개발로 문제가 된 일부 에너지 공기업을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평가등급이 상승했다. 하지만 공기업들이 실질적인 경영 성과나 혁신도 없이 ‘맞춤형 속성 과외’로 평가 점수만 끌어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평가 무용론 대두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경영평가 결과 ‘S(탁월)-A(우수)-B(양호)-C(보통)-D(미흡)-E(아주 미흡)’ 등 6개 등급 중 C등급 이상을 받은 기관에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 예컨대 A등급을 받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직원은 기본 월급의 200%, 사장은 96%를 성과급으로 받는다. 반면 C등급을 받은 한국철도공사 직원은 기본 월급의 100%, 사장은 48%만 받는다.

평가 결과 S등급을 받은 기관은 없었지만 A등급을 받은 기관(20개)은 전년보다 5개 늘었다. B등급을 받은 기관도 51개에서 53개로 증가했다. 그 결과 성과급을 받는 C등급 이상 기관은 101개에서 103개로 증가했다. 전체 공공기관의 88.8%가 성과급을 지급받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결과를 두고 “박근혜 정부가 강도 높게 추진한 공공개혁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영평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평가 대상인 공공기관에 대해 실제 능력보다 후하게 점수를 주거나 명확한 채점 근거를 내놓지 못한 채 적당히 중간 점수를 주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116개 평가 기관 중 83개 기관(71.6%)은 B, C등급에 몰려 있었다. E등급을 받을 경우 기관장이 해임건의 대상이 되지만 4개 기관 모두 기관장이 자리에 오른 지 6개월 미만이란 이유로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영평가를 통해 퇴출 기관장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은 2009년 ‘기관장 퇴출제’가 도입된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D등급을 받은 기관도 모두 9개였지만 이 중 권혁수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 3개 기관장만 경고 조치를 받았다. 나머지 6개 기관의 기관장은 취임한 지 6개월이 안 됐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재임 기간이 짧은 기관장에게 당장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일각에선 일부러 그런 기관만 골라서 낮은 점수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기관장과 감사에 대한 평가 역시 두루뭉술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관장 평가의 경우 평가 대상 49명 중 47명(95.9%)이 ‘보통’ 등급 이상을, 상임감사·감사위원 평가에서도 29명 중 27명(93.1%)이 ‘보통’을 받았다. 정부는 기관장 평가를 인사 참고자료로 활용한다고 밝혔지만 성적이 그다지 차별화되지 않다 보니 평가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영평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평가 대상에서 빠진 국책은행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 기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정작 이번 평가 대상에서 빠졌다.

두 국책은행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준정부기관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금융위원회)가 자체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지만 강도는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금융위는 2013, 2014년 경영평가에서 산업은행에 A등급을 줬다. 그 결과 산은 회장과 직원은 각각 100%와 90%의 성과급을 받았다. 금융위는 2013년 수은에도 A등급을 줬다. 2014년에는 모뉴엘 사기 사태와 경남기업·성동조선해양의 부실이 겹쳤는데도 70%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B등급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산은과 수은을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에 넣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경영평가에서 D등급 이하를 받을 경우 기재부가 해당 기관으로부터 경영개선 계획을 제출받아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예산 편성 때 경상경비를 조정하는 등의 관리가 이뤄진다.

정부 관계자는 “방만하게 운영되는 국책은행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도 공공기관 재지정 과정에서 이 기관들을 준정부기관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박민우 기자
#공공기관#경영평가#국책은행#평가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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