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與 비대위 깨버린 친박, 보수정권 내놓고 廢族될 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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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누리당의 상임전국위원회가 재적(52명) 과반인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상임전국위가 무산되면서 당헌 개정안 등을 의결할 전국위원회도 열리지 못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임 및 비대위원 선임을 추인하고, 혁신위원회에 쇄신의 전권을 부여할 기회는 날아갔다.

친박(친박근혜)계는 비박(비박근혜)계 중심의 비대위원과 강성 비박 김용태 혁신위원장 인선에 반발해 조직적으로 회의 개최를 보이콧했다. 인선안이 불만이라면 회의를 열어 부결시킬 일이지 회의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다. 정 원내대표가 “친박의 자폭 테러”라고 개탄하고, 김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사퇴하며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일갈한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친박계는 “비박의 일방통행을 막고 협심하자는 뜻일 뿐”이라니 국민을 바보로 아는 모양이다.

상임전국위원인 정두언 의원이 “동네 양아치도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며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이 (이 당의) 정체성이고, 국민이 볼 때 새누리당은 보수당이 아니라 독재당”이라고 성토한 것은 거칠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다. 4·13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놓치고도 새누리당의 주류 세력인 친박계는 국민에게 버림받은 이유를 한사코 외면하고 있다. ‘진실한 사람’ 선거운동을 벌여 참패를 자초하고도 국민 앞에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대통령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친박은 표를 모아준 정 원내대표가 뜻밖에 비박 중심으로 비대위원들을 인선하고, 혁신위원장이 “뼛속까지 바꾸겠다”고 선언하자 당권을 놓칠 순 없다며 ‘친위 쿠데타’에 나섰을 것이다. 친박계 초·재선 의원 20명이 그제 ‘쿠데타’ 운운하며 비대위 출범에 반발한 것은 자신들에게만 정통성이 있다는 친박 패권주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새누리당의 모습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 하고도 패배의 의미조차 모르던 열린우리당과 너무나 흡사하다. 당이야 어찌 되든 당권만 잡으면 된다는 친박 패권주의는 오만과 독선에 빠졌던 친노 패권주의와 오십보백보다. 결국 친노는 1년 반 뒤 정권을 잃고 폐족(廢族)이 됐고, ‘진보좌파 10년’은 막을 내렸다. 항간에선 박근혜 정부-새누리당으로 ‘보수 10년’도 끝났다는 소리가 파다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수의 정신을 굳게 지키지도 못하고, 국가 경영에 유능하지도 못하면서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한 수구(守舊) 새누리당에 보수적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갈 데까지 간 여당을 수습할 사람은 당의 실질적 오너인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으나 대통령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여당의 계파 싸움에 여소야대 정국의 협치(協治)도 물 건너갔다. 집권당이야 바꾸면 그만이지만 나라가 걱정이다.
#새누리당#상임전국위#정진석#비대위#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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