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환경재앙보다 무서운 환경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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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고백하건대 아침에 일어나면 동아일보 1면 기사보다 스마트폰에 뜬 ‘미세먼지 예보’를 먼저 보게 된다. 미세먼지는 손에 쥔 것도, 눈에 보이는 존재도 아닌지라 내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탓이다. ‘매우 나쁨’이라 떠 있는 걸 본다 한들 제 기능을 하는 건지 구멍이 크게 뚫렸는지 확인할 길 없는 마스크 하나 챙기는 게 대책의 전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소심한 준비마저 쓸모없는 헛손질이었다. 내가 사는 경기도는 대략 서울보다 16배나 넓은데 초미세먼지 측정망은 서울에 25곳, 경기도엔 고작 17곳 설치됐다는 게 동아일보 임현석 기자의 단독 보도 내용이다. 환경부에선 인구를 고려한 배치라는데 1200만 경기도민은 999만 서울시민만 못한 2등 국민인가? 안심하고 숨 쉴 환경이 아니다. 당최 믿지 못할 환경이고 못 믿을 환경부다.

한술 더 뜨는 일도 있다. 미세먼지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황사는 기상청이 예보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전문 지식이 있는 그들에겐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구분해 예보하면서 서로 자기 영역이라고 다퉜다는 소문까지 듣고 나니 미세먼지나 황사나 똑같이 ‘나쁜 존재’로 인식하는 내겐 ‘저런 수준이면 환경부는 없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부의 수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정부는 환경부 주도로 지난해 ‘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디젤 차량에 ‘클린’ ‘친환경’이란 수식어를 붙여가며 마냥 판매하기 좋게 만들어주다가 대기질이 나빠지니 나온 대책이다. 헌데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경유차량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물리는 내용이 검토되다가 기본계획에서 빠졌다. ‘산업계의 반발’에 밀렸다고 한다. 국내 독점인 현대기아차를 지칭하는 듯한데 이 회사에서 뭘 어떻게 했길래 정부 부처가 뽑은 칼을 그냥 칼집에 넣었는지 궁금하다. 환경 정책으로 어떤 산업 분야가 다소라도 위축될 개연성이 있다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후속 지원 대책을 마련하면 될 텐데 지레 겁을 먹고 본업을 회피한다면 과연 존재 가치가 있는 조직인가 싶다. 환경부라는 이름을 달고 환경과 산업을 반반 정도로 다룰 요량이면 산업부 환경국으로 조직을 축소시키는 방안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파문을 놓고 보면 더 긴 한숨이 나온다. 지난해 말 3차 피해 접수를 마감할 때 추가 접수는 없을 것처럼 굴었다.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발생한 기가 막힌 피해를 보고도 시한을 정하려는 자세는 환경 문제를 다루는 기관인지, 사고 주체인 옥시인지 분간이 어렵게 만들 정도였다. 결국 여론에 떠밀려 올해 4차 피해 접수를 시작하긴 했지만 환경부가 투입한 지금 수준의 인력으로는 언제 피해 조사가 마무리될지 불투명하다고 한다. 어떻게든 이슈에서 벗어나겠다는 이런 안일한 자세가 놀라울 뿐이다.

현 정권 출범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윤성규 장관이 그 어떤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대통령과 함께 물러날 생각이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 되지 않는 일들이다. 윤 장관이 수도 없이 이야기한 ‘좋은 규제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구호에 공감하지만 그것도 환경을 지켜낸 다음에 할 일 아닌가.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눈앞에 닥친 이런 환경재앙은 앞으로 더 많이 발생할 게 분명하다. 이런 미래도 무섭지만 환경재앙 앞에서 스스로 칼을 내려놓고 목소리도 낮추는 ‘믿지 못할’ 일들을 수행 중인 환경부가 나는 더 두렵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환경부#미세먼지#황사#기상청#윤성규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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