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여소야대와 공무원의 영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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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캐스팅보트는 ‘국민의당’이 아닌 공무원들이 쥐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A 씨를 최근 만났다. 그는 4·13총선에 대한 촌평을 이어가다 ‘공무원 역할론’을 꺼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화합의 정치가 실현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단 얘기였다. 그는 “일본이 안정성이 떨어지는 내각제를 택하고도 중심을 잡는 건 정권에 흔들리지 않는 공무원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영혼 있는 공무원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향후 2년은 죽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기우일까. 총선 후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압승이 예상되던 새누리당의 패배에 근무환경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후반부에 출몰할 공무원의 유형을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① 자아분열형=가장 멘털 붕괴가 심한 그룹이다. 주로 야당이 반대하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공무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누리과정 밀어붙이기 선봉대였던 교육부, 노동개혁 추진에 온 힘을 바친 고용노동부, 원격진료 등 보건산업화 정책에 방점을 찍었던 보건복지부의 관료가 대표적이다.

이들에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존재했다. 윗선의 지시만 잘 이행하면 승진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여소야대가 되면서 야당의 눈치를 봐야 할 힘든 처지가 됐다. 청와대의 강공에 발을 맞추자니 혹시 모를 정권교체가 두렵다. 한 과장급 복지부 공무원은 “청와대가 공직 기강을 다잡을 텐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걱정하다 자아가 둘로 분리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라며 씁쓸해했다.

② 복지부동형=“어차피 해봤자 국회에서 막힐 테니 애쓸 필요 없다”며 태업을 합리화하는 관료도 늘어날 것이다. 현 정권과 케미(궁합)가 안 맞았거나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면 ‘다음 정권까지 2년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각 부처에서 연구개발(R&D) 관련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은 이런 생각을 할 공산이 크다. 이들은 돈이 되는 사업이 대부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되면서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권한을 갖고 고군분투해왔다. 한 서기관급 공무원은 “미래부에 연구 과제를 상납하는 데 지친 공무원들이 지금부터 복지부동하며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③ 영혼회생형=아직 희망사항이지만…. ‘영혼 없는 공무원’의 모습을 탈피해 소신껏 국민의 삶 개선을 위해 정진하는 공무원도 나올 수 있다. 여야의 절충 지점을 세밀하게 파악해 화합 정치의 불씨가 되는 것 말이다. 예컨대 복지부는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주저해 왔다. 하지만 건보 제도 개선을 총선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국회 과반이 된 만큼 재추진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줄었다는 평가다.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여야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혼 있는 공무원’이 더 많아져서 임기 후반을 맞은 대통령과 여소야대 국회의 공존을 위해 헌신해 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여소야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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