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애들이 볼까 두려운 한국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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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인생론 교과서라면… 한국의 불량정치는 禁書 수준
與공천위장은 경쟁력 없고, 野책임자는 비례 4선의 철새
교과서 집필자부터 잘못 정했다… 권력욕-담합-억지의 정치판에서 대체 무엇을 배우겠는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디자인한다. 즉 칭찬받는 일이나 될 것 같은 일은 하고, 욕먹는 일이나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피해가며 산다. 세상사 그 자체가 인생의 교과서다.

세상사 중에서도 정치는 특별히 중요하다. 싫건 좋건 늘 쳐다보게 되고, 알게 모르게 이를 통해 세상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인생론 교과서로 치면 가장 많이 읽는 부분이다.

그래서 말한다. 정치에는 교훈이 있어야 한다. 법을 만들고 자원을 잘 나누는 것으로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보고 배울 게 있어야 한다. 정치에 무슨 그런 걸 기대하나 하겠지만, 역으로 정치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한다. 정치와 도덕이 같이 갈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곧 나라의 전부이던 시대, 그것도 그 군주가 정당한 목표를 가진 경우를 말했을 뿐이다. 지금은 다르다. 군주가 아닌 국민이 나라의 기둥이고, 국민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세상이다. 정치의 교훈적 기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치는 어떨까? 물어 무엇하겠나. 교훈을 담은 교과서가 아니라 금서(禁書)로 지정해야 할 정도의 불량서적이다. 정말 아이들이 볼까 두렵다.

솔직히 지난 대통령선거 때 좌절했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할 나라에 자기 성공의 이력이 약한 인물들이 대통령 후보가 됐다. 두 후보 모두 세상이 인정할 정도로 스스로 성공한 기업인도, 행정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니었다. 그저 전직 대통령들의 큰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자식이거나 측근이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할까? 우리 정치가 만든 인생론 교과서를 보자. 제1장 ‘큰사람 되는 법’, 그 내용은 이렇다. ‘잘 태어나라’, ‘큰 유산 물려줄 사람 만나길 빌어라’.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로 속이 불편한 판에 정치마저 이 모양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러고도 온전한 나라가 될 수 있겠나?

이번 공천정국을 보며 다시 좌절했다. 교과서로 치자면 집필자 선정부터 잘못됐다. 새누리당은 불출마 선언을 한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권을 휘둘렀다. 하필이면 강력한 야당 후보(김부겸)가 존재하는, 그것도 낙선하면 큰 망신을 당하게 되는 전통적 여당 독주 지역구 출신이다. 이런저런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했다. 이런저런 전력에도 불구하고 당을 바꿔가며 비례대표만 4선을 한, 그야말로 세상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이력의 소유자이다. 정치의 교훈적 기능을 생각했다면 불러내지도, 나오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러고도 당연한 듯 비례대표를 한 번 더 하겠다고 해서 말썽이 일고 있다.

공천의 내용은 더욱 심하다.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선거의 승패만큼이나 당내의 세력구도 재편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특정인과 특정 계파를 어떻게 치고, 어떻게 살리느냐가 주된 이슈가 되었다. 당연히 국익도 공익도 공천의 기준이 아니다. 당의 정체성도 특정 계파나 특정인을 자를 때만 적용된다. 온통 계파정치의 논리에 음험한 담합과 억지, 노회함이 판을 주도하고 있다.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현역 의원 등 힘 있고 목소리 큰 쪽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시비가 일고 있다.

다시 정치가 만든 인생론 교과서를 본다. 제2장 ‘출세하는 법’이다. ‘명분과 의리를 따라 살지 마라’, ‘이 편 저 편 오가는 것을 밥 먹듯 해라’, ‘힘 있는 자와 그 패거리를 찾아 붙어라’, ‘무슨 짓을 하고 살았든 고개를 당당히 들어라’.

국민도 무디어졌다. 불륜도 내 편이 하면 로맨스가 되는 진영논리 속에, 또 이기고 지고의 현실정치 논리 속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사라지고 있다. 방송에서도 술자리에서도 누가 밀고 밀리고, 어느 쪽이 몇 석을 얻느냐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권력욕은 정치적 의지로, 정의롭지 못한 담합은 정치력으로, 노회함과 억지는 리더십으로 읽힌다.

이래서는 안 된다. 현실정치 논리와 진영논리를 넘어 옳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심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TV도 끄고 신문도 치우자. 권력욕과 음험한 담합, 노회함과 억지로 가득한 이 불량한 정치가 아이들까지 오염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애들이 볼까 두렵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마키아벨리#새누리당 공천#더불어민주당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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