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통화 위해 산 넘어…“北, 국제전화 금지…감시·통제 강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9일 20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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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북한에서 탈출하기 위해 집을 떠난 부모님은 수개월째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 탈북 브로커가 집을 찾아와 아버지가 쓴 편지를 건넸다. 브로커를 따라 가면 통화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브로커를 따라 며칠 동안 밤새도록 산을 넘은 끝에야 브로커가 건넨 휴대전화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9일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북한 실태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에 등장하는 탈북자 최지우 씨(가명)의 사연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최 씨 등 탈북자 17명과 학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 전문가 1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절대적인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에게 보복을 가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정권을 장악한 후 통신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 휴대전화 가입자는 300만 명. 하지만 모두 국제 전화는 할 수 없는 국내용 휴대전화다. 일부 외국인을 제외한 북한 주민들의 국제 전화 사용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해외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려면 중국 등에서 들여온 이른바 ‘중국 손전화’로 몰래 중국 통신망에 접속하는 방법뿐이다. 최 씨처럼 중국 손전화를 구하지 못한 주민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내야 한다. 통화가 성사돼도 추적의 우려 때문에 15초, 1분씩 끊어서 통화해야 한다. 암호를 사용하고 절대 상대방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도 감청 때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북한 주민들은 짧은 통화를 위해 엄청난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중국 손전화를 갖고 있거나 국제 전화를 한 것 자체가 북한에서는 처발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적대국에 거주하는 사람과 연락하다 적발되면 반역죄나 정보유출죄를 물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정권의 감시와 통제가 김정은이 집권한 후 더욱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중에는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 감청과 불법 국제 전화를 적발하기 위해 해외에서 최신 장비를 들여왔다는 증언도 있었다.

아놀드 팡 조사관은 “그 무엇도 가족, 친구와의 연락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시도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북한 정권은 자국민에 대한 억압적인 통제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북한 주민의 자유로운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도록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올해 6월 말까지 진행하며 이런 내용을 담은 서한을 세계 45개 북한 대사관에 보낼 계획이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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