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달러로 핵개발, 그게…” 스텝 꼬인 홍용표 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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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장관 하루만에 ‘뒷수습’ 진땀

홍용표 통일부 장관(왼쪽)이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홍용표 통일부 장관(왼쪽)이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개성공단에 지급된 달러가 북한 노동당 서기실과 39호실에 상납돼 북한 핵·미사일 개발 등에 쓰였다는 통일부 발표의 ‘증거 자료’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홍용표 장관이 이날 긴급 현안 보고에서 “개성공단 달러의 70%가 서기실과 39호실에 들어간 것은 확인됐으나 그 돈이 핵·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확증’은 없고 ‘우려’만 있었다”고 답변한 게 발단이었다.

홍 장관이 전날 한 방송에 출연해 “(북한 노동당 서기실 39호실로 상납된) 돈은 핵무기, 미사일 개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치적사업, 사치품 구입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런 정보 자료는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던 것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홍 장관이 개성공단 달러의 핵·미사일 전용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북한 내부 문건 같은 ‘확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2일 개성공단 관련 정부 입장 브리핑과 14일 방송 출연에서 ‘자료’라는 표현을 쓰면서 혼란과 오해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해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고육지책의 결단을 내렸다는 정부가 사안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빌미를 준 셈이다.

○ 외통위에서는 “확증 없고 우려만”


홍 장관은 외통위 보고에서 “(핵·미사일 개발에) 돈이 들어간 증거자료, 액수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 등 야당 의원들로부터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확증이 있느냐는 추궁이 쏟아지자 홍 장관은 “확증이나 증거자료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며 “(방송과 브리핑에서) 증거자료처럼 얘기했는데 증거가 아니라 우려를 얘기한 것”이라고 물러섰다. “(핵·미사일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날 홍 장관의 스텝이 꼬인 것은 ‘정부가 핵·미사일에 전용된 걸 알고서도 개성공단을 운영했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이라는 지적에 부담을 느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15년 유엔 안보리 보고서에서도 개성공단 자금의 핵·미사일 개발 전용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홍 장관은 “(핵·미사일 개발 전용에) 확증이 있다면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될 수 있지만 확증은 없는 상태에서 그에 대한 우려만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혼선을 초래한 것과 관련해 홍 장관은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오해와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 14일 방송에서는 “파악됐다”

홍 장관은 14일 방송에 출연했을 때에는 개성공단 달러 현금의 핵·미사일 전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12일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는 “개성공단 임금 등이 대량살상무기(WMD)에 쓰인다는 우려가 있었다. 여러 가지 관련 자료도 정부가 갖고 있다”고 했다.

홍 장관은 두 번 다 ‘확증’ 대신 ‘자료’라는 표현을 썼다. 통일부는 외통위가 열렸던 15일 밤 해명 자료를 내고 “확증이 없다는 발언은 당에 들어간 70%에 해당하는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이나 치적사업, 사치품 구입 등 여러 용도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중 핵·미사일 개발에 얼마나 사용되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 또한 개성공단 달러의 흐름을 보여주는 북한의 명세서 같은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홍 장관이 14일 “자료가 있다” “핵·미사일에 사용됐다고 파악됐다”고 표현한 것이 혼선을 일으킨 셈이다.

통일부는 해명자료에서 “홍 장관이 말을 번복한 게 아니다”라며 개성공단 현금의 핵·미사일 전용 사실은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려만 있다”는 홍 장관의 외통위 발언이 결과적으로 다시 바뀐 셈이어서 통일부의 대응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국가정보원 측은 홍 장관이 언급한 관련 자료가 있느냐는 동아일보의 질문에 “정보 사항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홍 장관이 없는 사실을 말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 노무현 정부 때 달러 유입 공문서 존재


실제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성공단에 미국 달러로 유입된 현금이 북한 노동당에 들어가는 사실을 파악한 공문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측 근로자 월급(57.5달러) 가운데 30달러가 북 노동당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보험료 및 기타 비용 등을 제하면 근로자가 손에 쥐는 돈은 1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윤완준 zeitung@donga.com·강경석 /세종=신민기 기자
#개성공단#핵개발#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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