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성동격서… 수소폭탄 실험 지시해 놓고 ‘평화 신년사’ 낭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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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4차 핵실험]김정은 의도는
北 발표문 분량, 과거의 4배… 美비난-당위성 설명이 60% 차지
美의 무력행사 가능성 의식한듯… “핵기술 이전 않겠다” 언급 눈길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엿새 전 발표된 김정은의 신년사는 북한의 전형적인 ‘성동격서’ 전략이었음이 드러났다. 신년사를 낭독하기 전 김정은은 ‘수소탄(수소폭탄) 실험을 하라’는 지시를 하달한 상태였음이 6일 북한의 발표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4분의 1가량을 남북관계에 할애했고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핵이란 단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경제 발전을 위한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는 의견도 밝혔다. 4차 핵실험은 김정은이 직접 낭독한 신년사의 핵심 내용과는 상반되는 행위다.

김일성 주석 이래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는 믿을 수 없는 말잔치이긴 했다. 하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가 이번처럼 단 며칠 만에 신년사를 부정하는 큰 사건을 스스로 터뜨린 사례는 없었다. 이번 핵실험으로 앞으로 김정은이 발표할 신년사의 권위가 땅바닥에 추락하게 된 셈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발표 역시 과거 3차례의 핵실험 발표들에 비해 분량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1∼3차 핵실험 발표는 4, 5개 문장에 300∼400자 분량으로 짧았다. 이날 발표는 21개 문장에 1778자 분량으로 과거의 4배 정도로 늘었다. 핵실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발표문의 60% 정도는 미국의 대(對)북한 정책을 비난하면서 핵실험의 정당성을 설명한 것이었다. 북한은 1차와 2차 핵실험 때는 미국을 거론하지도 않았고, 3차 핵실험 때는 단 한 문장만 거론했을 뿐이다.

이번에는 특히 “핵 관련 수단과 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처음으로 내걸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핵무기 판매 및 기술 이전’이라는 마지노선을 넘게 되면 미국이 무력행사에도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북한 당국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3차 핵실험 발표 때부터 북한은 “주변 생태환경에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핵실험이 백두산 지하 마그마층을 흔들어 화산 폭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외부 비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미국#핵기술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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