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속살]“진실한 사람 우예 가릴지…” “뭔 총선, 만날 싸움질인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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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론에 흔들리는 대구… 당내 분란에 한숨 쉬는 광주
총선 넉 달 앞, 민심은 지금

20대 총선 4개월여를 앞두고 여야의 ‘심장부’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대구경북(TK) ‘물갈이론’의 진원지는 대구 동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에 대한 심판을 언급한 뒤 이 지역에서는 누가 진실한 사람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대구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수성갑에선 야권 불모지의 벽을 깨뜨리겠다는 김부겸 전 의원의 망치질에 탄력이 붙고 있다.

야권의 성지(聖地) 격인 광주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도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뒤처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호남발(發) 야권 개편’이 힘을 받는 모양새다. 급기야 3일 문 대표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이른바 혁신전대 요구를 거부하면서 당의 내홍도 바야흐로 정점을 향해 치닫는 형국이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여야에 무풍지대 격이었던 대구와 광주의 민심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했다. 바닥의 마음은 서울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냉정했다.

‘물갈이론’-김부겸에 흔들리는 대구


“사람에 속아가(속아서) 이제 겁난다카이(겁이 납니다). 하도 속아나니 진절머리가 나요.”

지난달 29일 동대구역 앞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류근성 씨(64)의 목소리에는 ‘TK 물갈이설’에 대한 피로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한편에는 사과밭, 한편에는 혁신도시가 동시에 존재하는 도농복합지역 동을에서는 현역 유승민 의원과 이재만 전 동구청장을 둘러싼 유권자들의 저울질이 벌써부터 시작됐다.

박 대통령과 ‘맞짱’을 뜨면서 일약 전국구 인물로 급부상한 유 의원에 대한 민심은 “여 촌동네서 이만한 사람 쉽게 안 나온다”는 24년 토박이 하모 씨(56)의 말이 상징한다. 박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선 것이 ‘괘씸’하다면서도 “요새 국회의원들 거수기 역할만 하이(하니). 식상하니까요”라며 유 의원을 두둔했다.

특히 부친상을 계기로 유 의원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방촌동의 한 미용실에서는 “대통령이 조화 하나 안 보낸 건 너무 야박한 거 아잉교”, “전쟁 중에라도 상을 당하면 싸우는 거도 멈추는 게 인지상정 아입니까. 이제 용서할 때도 됐다”는 동정론이 펼쳐졌다.

하지만 유 의원이 12년간 닦아온 기반이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기미도 곳곳에서 보였다. 율하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모 씨(43)는 “밖에서야 유승민이 마이 떴죠. 근데 그럼 뭐해. 여는 아직도 집값이 수성구 절반뿐이 안 되는 동네”라고 푸념했다. 남편 류모 씨(44)는 “솔직히 여기서 유승민이 3선 한 게 자기 힘이겠나. 대통령이 다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

재선 구청장을 지낸 이재만 전 구청장의 도전도 거세다. 팔공산 입구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모 씨(80)는 “이재만이가 친박인지 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면서도 “하지만 갸가 실력은 막강하다고. 지난번 대구시장 선거에도 나와서 차석이었다”고 말했다.

대구의 여론 주도층이 포진한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서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 두 거물의 혈전이 예상된다. 승자는 단숨에 ‘대권 주자’의 반열에 들 수 있지만 패자는 정치적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주민들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 명은 떨궈야(떨어뜨려야) 하는 거제? 둘 다 아까운데 우짜노…”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대구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김모 씨(68)는 “김부겸이 참 잘한데이. 여기서 벌써 몇 년째 돌아댕기고…. 내도 태운 적 있지만 택시 운전사들 사이에 평이 아주 좋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을 찍을 거냐”는 질문엔 그는 “저 당(새정치연합)만 아이었으면…. 대구는 1번은 찍어도 2번으로는 손이 잘 안 간데이”라고 말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대구지역 한 언론인은 “이번 총선은 김문수와 김부겸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투영되는 ‘보이지 않는 손’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구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킬 것인지, 새정치연합이라는 ‘변화’를 선택할지의 문제라는 얘기다.

문-안 ‘집안싸움’에 무너지는 광주 민심


“그 큰 조직에서 문재인 한 사람만을 위한 민주당, 그런 꼴이 되는 느낌이 자주 들고 있거든요. ‘민주당이 독재 아닌가’ 이런 생각이 개인적으로 가끔 드는디∼.”(50대 A 씨)

“안철수 의원이 이번에 전당대회를 새로 하자는 것은 잘한 일이여∼. 문재인 대표도 미련 없이 전대를 열어서 하나로 뭉쳐 가야 해.”(택시 운전사 김모 씨·45)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새정치연합 ‘양초(양 초선 의원)의 난’으로 불리는 문 대표와 안 의원의 ‘치킨 게임’을 지켜보는 복잡한 속내를 내비쳤다. 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안 의원이 탈당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쏟아졌다. 내년 총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단일대오는커녕 집안싸움 하느라 당 지지율을 까먹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 지지율 5%가 반영된 듯 문 대표에 대한 반감은 컸다. 광주 서구 치평동에서 만난 80대 남성은 “오죽했으면 호남이 사랑하는 당의 대표가 지지율이 5%가 나왔겠느냐”며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는다”고 열을 올렸다.

광주시의회 관계자는 “광주에서 문 대표에 대한 옹호 여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도 물러나지 않으면 반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다만 문 대표를 포함해 그간 당을 이끌어온 분들이 책임지고 물러나고 세대교체를 이뤄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문 대표에 대한 비주류 측의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광주 북구의 정모 씨(40)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적한 ‘쿠데타’라는 표현이 딱 맞다”며 “대선 후보급이라는 사람들이 당을 계속 흔드는 게 문제다. 먼저 통합한 뒤 혁신하는 게 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반박했다.

3일 문 대표가 안 의원의 혁신전대 제안을 거부하며 당 내홍이 더욱 깊어지면서 광주 민심의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천정배 신당’은 내년 1월 창당을 예고한 데다 광주 동구가 지역구인 박주선 의원도 이미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지난달 ‘통합신당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광주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강철수(강한 철수)’라고 불린 안 의원이 빨리 탈당해서 천정배 의원과 손을 잡아야 되는 것 아니냐.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후보 등록일이 15일인데 제출 서류에 당명을 뭐라고 내야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대구=홍정수 hong@donga.com·길진균  / 광주=황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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