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길진균]野, 재벌총수 출석요구 ‘고무줄 잣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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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정치부
길진균·정치부
10일 국정감사 시작을 앞두고 대기업 임직원 출석 명단을 둘러싼 신경전이 뜨겁다.

올해는 ‘롯데의 경영권 분쟁’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등 재벌 총수 일가의 도덕성 시비가 도마에 많이 올랐다. 특히 정부와 여당의 ‘노동 개혁’에 맞서 ‘재벌 개혁’ 카드를 꺼내 든 야당은 상당수 재벌 총수를 국감장에 부르겠다며 대기업을 압박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그 후보군 중 한 명이었다. ‘땅콩 회항’ ‘경복궁 옆 호텔 건립’ 등 이슈와 관련해 국토교통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상임위에서 “조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최근 조 회장 등 일부 총수의 이름은 여야 합의 과정에서 증인 출석 요구 명단에서 제외됐다. 일각에선 “무차별적인 기업인 소환을 자제하자”는 당 안팎의 의견을 야당이 수용한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조 회장의 경우 개운치 않은 면이 있다. 교문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새누리당은 조 회장 증인 채택을 방해하지 말라”고 주장하다가 동료 야당 의원들에게서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나”란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당 원로인 문희상 의원 때문이다. 조 회장은 2004년 경복고 4년 선배인 문 의원의 부탁을 받고 문 의원의 처남 김모 씨를 한 미국 회사에 취업시켰다는 의혹으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씨는 실제 회사에 근무하지 않고도 2012년까지 8년 동안 급여로 74만7000달러(약 8억 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감장에서 문 의원의 청탁 의혹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야당이 다른 대기업 총수와는 달리 조 회장의 증인 채택은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기업 총수의 국감 증인 출석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권이 기업인을 불러 망신 주기를 하거나 “나에게 도움이 됐으니 국감에서 빼주겠다”는 식으로 뒷거래를 하는 창구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조 회장 증인 채택 문제가 자칫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기를 바란다.

길진균·정치부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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