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면 좀 어떠냐’던 노무현 정부…치열했던 동맹파 vs 자주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1일 1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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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는 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우며 2003년 집권한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내에서는 이른바 동맹파 대(對) 자주파 간의 노선갈등이 치열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제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놓는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는 변화할 것이다. 무력이나 힘의 사용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동북아 역내에서 중견 국가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이 동맹에서 이탈하려고 하느냐”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고 동맹파와 자주파의 대결은 자주파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盧정부 초반부터 정면충돌한 동맹파와 자주파

노무현 정부 들어 동맹파와 자주파가 부딪힌 첫 번째 케이스는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이라크 추가파병을 둘러싼 정부 내 이견이었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놓고 동맹파 일각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전투병 파병’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자주파 쪽에서는 파병 반대 여론까지를 감안해 ‘비전투병 파병’에 국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둘러싸고도 자주파와 동맹파 사이에 또 다른 갈등이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북미3과 직원의 대통령 폄하 발언이 공개되면서 그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공직비서관실의 2003년 11월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 결과보고’에는 “외교부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이 반미주의자이므로 개입은 최소화시킨다’는 전제를 기초로 협상을 진행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양쪽 모두 정리하자”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청와대는 자주파를 쳐내는데 반대했고 결국 윤 장관이 옷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외교부내 동맹파도 줄줄이 경질되거나 보직에서 해임됐다.

○승자가 된 자주파 내부에서 발생한 균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건 유출 파동은 동맹파와의 세력다툼에서 승리한 자주파 내의 노선다툼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결이 막을 내릴 무렵 자주파 내부에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셈.

전략적 유연성이란 미국이 미군재배치계획에 따라 전투병력의 필요에 따라 해외주둔 미군을 임의로 배치한다는 것. 붙박이 군으로 인식되던 주한미군도 필요시 한반도 밖으로 차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 변수였다.

정부는 2005년 4월 6일과 15일, 두 차례에 대미 협상과정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회의가 비공개리에 진행됐다. 참석자는 당시 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장관, 이종석 NSC 사무차장,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 천호선 국정상황실장 등.

회의가 열린 이유는 이미 한미 외교당국 사이에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정도의 협상 진전이 있었는데 대통령에게 내용이 전달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것.

○최악으로 치닫게 된 한미동맹


표면적으로는 보고 등 절차상 문제를 점검하는 차원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종석 차장으로 대표되는 NSC가 대통령을 배제한 가운데 대미(對美) 저자세 외교를 벌인 것 아니냐는 대목을 따져 묻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 같은 내부회의 문건이 청와대 내 강경 자주파들에 의해 유출됐다는 것. 이 문건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에게 넘어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강경 자주파가 이 차장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그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결정권을 독점하면서 점차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했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실제로 자주파는 그를 향해 ‘기회의주의자’ ‘위장된 숭미(崇美)주의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은 최악의 상태로 빠졌고 후임 이명박 정부는 망가진 동맹을 복원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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