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2015년 20년… 분가하면 家長 인정해줘야 집안이 잘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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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선 단체장’ 김관용 경북지사에 복지갈등 등 해법을 묻다

《 복지 갈등, 이념 대립, 지자체 재정 위기…. 이런 복잡한 과제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맏형격인 김관용 경북도지사(72)에게는 어떤 해법이 있을까. 국내 유일의 6선 지자체장(경북 구미시장 3선, 경북도지사 3선)의 관록을 쌓은 김 지사에게는 이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주위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오는 일이 많다. 그는 증상 치료가 아니라 근본 처방을 고민한다. 둘러 가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우리의 바른 모습인 정체성을 강조한다. 김 지사는 “올곧은 마음과 신바람으로 크게 화합하며 새롭게 나아가는 분위기가 국력의 구심점으로 공유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우리의 바른 모습인 정체성을 강조한다. 김 지사는 “올곧은 마음과 신바람으로 크게 화합하며 새롭게 나아가는 분위기가 국력의 구심점으로 공유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김 지사는 ‘갈등과 대립을 잘 버무려 크게 화합할 수 없을까’ ‘우리의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즐겁게 나아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깊이 몰입하는 일이 최근 들어 더 잦아졌다. 결국 우리의 정체(正體·바른 모습)에 대한 성찰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17일 대구 북구 연암로에 있는 경북도청 집무실에서 김 지사를 만나 대한민국이 크게 화합하며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복지 문제를 비롯해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이다.


“‘주면 좋고, 안 주면 기분 나쁘고’ 하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정부가 ‘복지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명확하게 국민에게 보여주는 게 시급하다고 본다. 정부가 국민에게 매월 20만 원을 복지 차원에서 준다고 하자. 국민 입장에서는 이게 많은지 적은지 판단하기 어렵다. 기준이 없으니까. 국민 소득에 따라 어느 정도 복지가 돼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게 기본이다. 복지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므로 유상이든 무상이든 ‘기준’을 놓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지금은 이런 게 없으니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리적 비약이 심한 이야기들이 무성하고 갈등도 심해진다.”

경북도의 급식 지원은 농어촌과 소규모 학교를 중심으로 하되 예산 형편에 맞게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지원액은 하위권이지만 특별한 갈등은 없는 편이다.

김 지사는 ‘갈등 공화국’이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 대립과 갈등이 지나치다는 우려에 대해 “국민의 핏속에는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신바람 나게 살아온 저력이 있다”며 “사회가 다양해지고 욕구가 분출하는 지금 시대에 한발 물러서 우리의 얼굴(정체성)을 살펴보는 거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거울이 그가 2011년 11월부터 고민하는 경북 정체성이다. 경북만의 정체성이 아니라 경북이 앞장서 이런 문제에 대해 국민과 함께 공유하면서 우리가 누구였고 누구이며 누구여야 하는가를 성찰해보자는 뜻이다.

―어떤 성과를 거뒀나.

“이달까지 꼭 3년 동안 전문가 60여 명이 경북정체성포럼을 만들어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시대별로 화랑(삼국통일 원동력), 선비(사회적 실천), 호국(항일 및 6·25전쟁 극복), 새마을(가난을 이겨내고 지구촌 번영에 기여)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4가지 ‘얼굴’을 그렸다. 올곧음(정의·正義)과 신바람(신명·神明), 어울림(화의·和議), 나아감(창신·創新)이다. 경북의 역사에서, 나아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이런 정신이 확실히 꿈틀거린다. 우리의 얼굴이요 에너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나. 나부터 이런 정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경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은 그동안 노력을 묶은 ‘경북의 혼, 한국정신의 창’이라는 제목의 책(442쪽)을 만들어 27일 구미에서 공개한다. 큰 뜻을 세워 길을 연 ‘올곧음’, 흥과 멋의 ‘신바람’, 더불어 사는 ‘어울림’, 대한민국의 울림 ‘나아감’을 중심으로 역사 속의 혼(魂)과 미래를 여는 창(窓)으로 구성했다. 정의 신명 화의 창신에서 한 글자씩 따 만든 ‘정신의창’은 ‘(한국)정신의 창’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내년부터 학교교육과 기업현장에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이런 정체성의 현실적 역할은….

“정체성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것 아닌가.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조상의 흔적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빛나는 문화재와 곧은 선비정신, 나라를 지킨 호국정신, 가난을 이겨낸 새마을운동 같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우리의 얼굴이고 거울이다. 이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면 갈등과 대립이 싸움이 아니라 잘살기 위한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다. 국력 낭비를 줄이고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아주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길이라고 본다. 확고한 신념과 추구하는 방향이 분명하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건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경북도는 지난해 9월 터키에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육상 및 해상실크로드를 탐험했다.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면서 미래를 여는 자신감으로 가능했다.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인식이 현실적으로 발휘된 사례다.

김 지사는 정체성은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풀어나가는 원칙이고 열쇠라고 강조했다. 독도 문제가 그렇고 지방자치도 마찬가지다.

―최근 독도입도지원센터 건립을 놓고 정부가 우왕좌왕했는데….

“정부가 자신감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 아쉽다. 독도는 분쟁이나 논란의 섬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문헌 등 수많은 근거가 독도는 우리 영토라는 점을 명확하게 증명한다. 그런데도 이번 같은 일이 생기는 이유는 독도에 대한 태도가 어정쩡하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입도지원센터는 우리 땅에 만드는 단순한 편의시설일 뿐이다. 관광객뿐 아니라 조업 어선들이 긴급 피난할 수 있는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한일 외교 차원을 자꾸 생각하면 공연히 복잡해진다. 그냥 경북도가 알아서 하도록 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일본이 습관처럼 항의해도 우리 정부는 ‘관할 지자체(경북)가 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정부와 협의해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식으로 하면 그만 아닌가. 입도지원센터와 방파제는 경북이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이 활발한데….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타율적 정책이 아니다. 남부지역 수해 현장을 살펴보러 가던 당시 박 대통령이 경북 청도를 지나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을 복구하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국가적 에너지로 모은 게 시초다. ‘어렵더라도 힘을 모아 한번 해보자’는 정신이 새마을운동이다. 이렇게 가슴 뛰는 혼이 우리의 소중한 자화상이고 정체성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새마을운동은 더 큰 차원에서 함께 잘살기 운동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마을운동 국제화가 시들해지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우려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유엔이 새마을운동 국제화에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다. 정부와 관계없이 탄탄하게 발전시켜 우리의 국제적 저력으로 삼아야 할 가치가 높다.”

―내년은 자치제 20년인데 재정위기 같은 걱정이 많다.

“자치제의 큰 틀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결혼하고 분가하면 가장(家長)으로 인정해줘야 집안이 잘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앙정부는 여전히 지자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불안스럽게만 보지 말고 과감하게 권한을 지방에 넘기고 대신 엄격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 국가의 전체적인 역량을 키우는 바른 길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조직권한도 지자체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것처럼 이제 지자체의 틀을 바꿀 때가 됐다. 성년이 된 지자체가 스스로 성장하는 자치(自治)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원년이 돼야 할 것이다. 그 대신 지자체가 배타적인 소지역주의가 되지 않도록 지자체 스스로 경계하는 일 또한 자치의 과제이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검무산 자락에 지붕을 한옥 양식으로 짓고 있는 경북도청 신청사. 내년 7월 이전할 예정이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검무산 자락에 지붕을 한옥 양식으로 짓고 있는 경북도청 신청사. 내년 7월 이전할 예정이다.
―내년 7월 경북도청 이전의 국가적 의미는….

“신도청 소재지(안동)는 세종시, 충남 신도청과 북위 36도 선상에 나란히 위치한다. 광역지자체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은 경북이 충청권 강원권과 함께 국토의 새로운 허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동서 발전축이 생긴다는 기대가 많다.

그래서 이름도 ‘황금허리’라고 지었다. 허리가 튼튼해야 힘을 쓸 수 있으니까. 올해는 ‘경상도’라는 말이 생긴 지 꼭 700년이다. 내년은 새로운 700년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한옥으로 짓는 청사도 아름답지만 경북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살필 수 있는 전시관 같은 시설도 마련한다. 청사도 정체성을 담아야 가치가 높아진다.”

김 지사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경북이 시작한 정체성 세우기가 지역별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계기가 돼 신바람이 나라에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6선 단체장#김관용#경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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