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급회담 한달 여유두고 南 지켜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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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 北실세 3인 전격방문]정부 배경분석-대책마련 분주

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4일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4일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4일 인천 아시아경기 폐막식 참석은 전격적이었다. 폐회식 전날 남측에 통보한 방식이나 최고위급 3명이 동시에 방문한 형식 모두 전례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로 한국과 격돌한 지 일주일 만에 태도를 돌변해 ‘대화 모드’로 전환했다는 의도에 관심이 쏠렸다. 정부 당국자는 “외교 일꾼(외무성)으로 못 푸는 상황을 대남 일꾼(통일전선부)이 넘겨받는 게 아닐까 할 정도”라며 배경 분석과 향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최룡해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당비서(왼쪽)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최룡해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당비서(왼쪽)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 외교 일꾼 대신 대남 일꾼 전면에 나서

북한은 올해 들어 전방위적인 외교력 강화에 역점을 둬왔다. 4월 외무상에 취임한 이수용은 74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아프리카 유럽 동남아 대륙을 휘젓고 다녔다. 소원해진 우방국 관계를 복원하고 대북 지원을 얻기 위해서다. 외교 노력의 압권은 9월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였다. 15년 만에 외무상이 직접 총회에 참석해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고 외교적 지지를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북한 인권 고위급 회의 참석을 거절당했고 이 외무상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귀국하고 말았다. 11월에는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인권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도 외교적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올해 7월, 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앞서 한국을 방문했고 유엔 주도의 대북제재에도 동참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3년이 가깝도록 중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배경엔 불편한 북-중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과는 ‘인질 외교’를 구사해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으나 북한이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주도권을 상실했다. 미국인 3명을 억류하고 있는 북한은 미국의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을 수락해놓고 2번이나 번복했다. 오히려 미국이 북핵만큼 인권 문제를 중시하게 만드는 역효과만 초래했다. 일본과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최대 관심사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교섭을 시작했지만 조사 범위와 발표 시기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시선을 자연스레 대남관계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 북, 인권문제 등에 대한 한국 태도 지켜볼 듯

한국 정부는 북한이 대화로 돌아온 것을 일단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북한이 먼저 유화 공세로 나온 상황에서 대북 기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란 숙제로 안게 됐다.

외교 소식통은 5일 “북한이 먼저 대화에 나온 뒤, 지금까지 요구사항이던 전단(삐라) 살포 중단과 인권 공세에 대해 한국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선불(先拂) 외교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4일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하면서도 ‘10월 말 또는 11월 초’라고 공백을 둔 것은 그동안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본 뒤 본격적인 대화 국면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에서 제기한 한국이 이를 갑자기 철회하기란 쉽지 않다. 16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대북 메시지를 꺼낼지 주목되는 이유다. 23일에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열려 전시작전통제권 재연기가 논의된다. 북한 위협 문제가 강조될 수밖에 없는 회의다. 북한이 그동안 반대해온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북한 인권사무소가 곧 서울에 설치됐을 때의 반응도 주목된다.

○ 남, 대북정책은 이제부터

북한 3인방의 방문을 대북정책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원 관계자는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 문제가 해결됐을 때도 승리로 인식한 한국이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남북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줬다”며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의 답방 여부와 관련해 정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경기 폐회식이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이 나온 날(10월 4일)에 열린 만큼 북한이 애초부터 폐회식 참석을 계획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규모 응원단 파견은 불발했지만 ‘통 크게’ 대표단을 보내 남측의 ‘통 큰 결단’을 유도한 접근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남북관계에서 여론과 대외관계를 신경써야 하는 한국은 북한에 주도권을 빼앗기기 쉽다”며 “한미, 한중 등 주변국과의 협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한#북한 실세 3인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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