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안행부부터 수술해 쇄신의지 보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관료 손에 맡겨진 관료 개혁]
공무원 개혁방안 안행부 주도 논란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 위축으로 경기 회복세가 직격탄을 맞은 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 챙기기 행보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셀프 개혁’으로 정부 신뢰 회복할 수 있을까

그만큼 박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개조 방안’ 발표도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 내에서는 6·4지방선거 후보 등록일(15, 16일) 전후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개조 방안에는 관료사회 개혁과 국가안전처 신설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 퇴직 공무원의 유관기관 취업 금지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방안들이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민낯을 드러낸 관료사회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혁명적인 대안이냐는 점이다. 당장 안전행정부가 관료사회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셀프 개혁’ 논란만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대 정부가 관료들의 입김에 관료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것처럼 현 정부도 성과 없는 셀프 개혁의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행부는 현재 △폐쇄적인 인적구조 △보직관리 △평가 등 세 가지 방향에서 공직사회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내용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7일 “외부 인사에게 공직의 문을 넓히면서 정부 내에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관련 보직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직 운용 체계도 손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도 안행부가 구상하는 공직 개혁 방안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채용을 확대하고, 순환보직을 축소하는 등의 대책으로 관료사회의 배타성과 복지부동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다.

○ 안행부 전면개혁으로 관료사회 변화 이끌어야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 3.0’은 경직된 관료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였지만 초기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료들에게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 개혁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만큼 당과 민간 전문가들이 강력한 행정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1일 “관료들에게 ‘셀프 개혁’을 주문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공무원이 아닌 외부 민간 전문가들이 개혁 방안을 만들어 정부에 들이밀어야 하고, 관료 전체가 아니라 소수 부처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서도 관료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부처의 인사와 조직 운용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안행부를 전면적으로 개혁해 관료사회 변화의 확실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 역대 정부의 ‘개혁 실패’ 반면교사로 삼아야

역대 정부에서도 관료 중심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8월 행정안전부(현 안행부)는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5급 공채를 신설하되 2015년까지 5급 채용 인원의 절반을 시험 없이 서류와 면접을 통해 뽑겠다는 내용이었다. 채용 경로를 다양화해 행정고시 기수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행안부는 “1949년 고등고시 도입 이후 61년 만에 공직사회에 획기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발표 직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외교부 5급 특채 논란이 불거지면서 특채 확대가 현대판 음서제도(고려·조선시대 귀족 또는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관료로 채용했던 제도)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행정고시를 5급 공채로 이름만 바꿨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관료가 만든 개혁안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좌초한 것이다.

외환위기로 정부 개혁 요구가 강했던 김대중 정부 때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재정부)가 행정 개혁을 주도하면서 사실상 예산만 낭비한 꼴이 됐다. 대통령직속 기구였던 기획예산위는 1998년 46억 원을 들여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전 부처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하지만 부처들의 반발이 거셌고, 실무적으로 행정자치부(현 안행부) 인사들이 개편 작업을 주도하면서 오히려 정부조직 개편 이후 부처가 한 곳 늘어나는 기형적인 결과만 낳았다. 당시 학계에서는 행정 개혁 과정에 민간의 참여가 막혀 빚어진 결과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셀프 개혁’ 논란과 관련해 “안행부의 방안을 전적으로 수용해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하는 것”이라며 “셀프 개혁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여러 보완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신광영 기자
#안행부#민생대책회의#관료 셀프개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