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고 위험한 인권침해” 오바마 위안부 발언 분석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6일 2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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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을 묻는 질문을 받고 예상 밖으로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고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어야 하고, 그들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끔찍하고(terrible), 매우 지독한(egregious) 인권침해 문제라고 생각하며, 전쟁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쇼킹한(shocking) 일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 국민들도 과거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이해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발언했다.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한일간의 특정 현안에 대해 분명하고 강하게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명박 정권 후반기와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한일문제를 푸는 데 피할 수 없는 첨예한 현안이 됐다. 즉 위안부 문제의 진전을 보지 않고는 다른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게 두 정권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위안부에 대한 발언은 한국 정부의 이런 입장을 충분히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 비판적인 야당조차 이 발언에 대해서만큼은 후한 평가를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원하는 것 이상의 발언을 얻어냈다며 만족할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발언은 다른 배경도 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인데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인권에 관한 것이고, 요즘도 세계 곳곳의 내전이나 분쟁 지역에서 여성의 인권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이 늘 하고 싶고, 하고 있는 말을 좀더 강하게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부 분석대로 미일 정상 회담 후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 반박하는 성격도 있고, 일본에서 경제적인 실리를 취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철저하게 한국 편만 들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는 "일본과 한국 국민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를 생각해 어떻게 하면 이런 과거사를 둘러싼 긴장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고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이 발언은 세 가지 점에서 음미해 봐야 한다. 첫째는 그가 위안부 문제가 아닌 한일 현안, 즉 독도 문제 등에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위안부 문제를 제외한 한일 갈등에 대해서는 개입하거나 한쪽 편을 들 생각이 없다. 두 번째는 미래를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일 양국이 더 이상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미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또 다시 이번 수준의 발언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세 번째는 이 발언이 한국에게 유리하고 일본에게 불리하다고 단안(單眼)으로 보기보다는 미국의 국익차원에서 봐야 한다. 즉 미국은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든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 대해서는 위안부 발언으로 점수를 얻고, 일본에 대해서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방위를 약속함으로써 일본을 달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위안부 문제도 결국은 한일간에 처리할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지지는 지지일 뿐 해결까지 해주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우위를 차지한 것은 분명하므로 이를 지렛대 삼아 일본이 이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오도록 압박해야 한다.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의 위안부 발언에 대해 매우 당혹해 한다는 현지 보도다. 이런 분위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둘째, 투 트랙 전략을 고려할 때가 됐다. 우리가 유리한 현안과 그렇지 못한 현안을 나누고, 두 현안에 달리 대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미국은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의 지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조건을 붙여' 용인함으로써 협상의 우위를 차지하고 다른 것을 얻어내야 한다. 조건이라 함은 일부 보도된 것처럼 한국 정부의 승인 없이는 어떤 경우도 일본의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것 등이다.

셋째, 판을 크게 보는 것이다. 현재 한일간에는 위안부와 역사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진전이 없다. 일본이 전부는 아니지만, 일본이 빠져서도 안 되는 게 이들 구상이다. 중국이 급부상함으로써 중국에 기댈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일본을 배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카드가 모두 필요하다. 물론 국민감정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국익에 입각한 국가지도자의 설득과 선견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위안부에 대한 발언을 과대평가함으로써 한일 갈등 전반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하나 해결된 게 없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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