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주역들에게 듣는다<下>경제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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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60주년]

《 한미동맹 60년의 과실이 가장 풍성하게 맺은 곳은 경제 분야.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은 미국의 원조에 힘입어 생존과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강의 기적’은 한국의 수출지향 산업화 전략이 밀고, 한국 제품의 주요 판로가 된 미국 시장이 끌어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2007년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 경제관계가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윈윈 단계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태미 오버비 미 상공회의소 부의장에게 한미동맹과 경제발전의 상관관계와 그 미래를 들었다. 》
▼ “교역 늘면 당연히 마찰도 커져… 동맹 토대로 실익 극대화 필요” ▼

■ 황두연 前통상교섭본부장


“전후(戰後) 복구 지원국-피지원국 관계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 되기까지 한미동맹 60년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역사입니다.”

황두연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72)은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 없이는 한국 경제의 건설도, 도약도 상상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미동맹은 안보 동맹의 성격이 크지만 1950년대 전후 복구, 60, 70년대 산업화, 80, 90년대 수출 확대, 2000년대 한미 FTA 체결까지 한국 경제사를 설명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요소라는 얘기다.

황 전 본부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걸쳐 제2대 통상교섭본부장(2001년 2월∼2004년 7월)을 지냈다. 1979년 경제기획원에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긴 뒤 주로 무역과 통상 협상을 맡아 ‘트레이드(trade) 맨’이라 불렸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최소화하는 한편으로 한미 FTA 협상의 초석을 놓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미동맹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 가장 큰 역할로 황 전 본부장은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을 한국에 열어준 점을 꼽았다. 그는 “수출에 첫발을 떼게 한 가발과 합판도, 전자산업의 대표상품이었던 컬러TV도 미국 시장이 주(主)였다”면서 “미국의 일반특혜관세(GSP) 혜택으로 한국 상품이 수출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GSP는 미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관세를 면제하거나 인하해 주는 제도로, 한국은 1988년까지 적용받았다.

이른바 ‘북한 리스크’로 인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준 점도 강조했다. 황 전 본부장은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조정할 때나 환율, 금융시장의 변동이 커질 때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의 안보가 튼튼하다는 점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경제에서도 한미동맹이 굳건하다고 믿던 1980년대 중반 미국의 통상 압력이 시작됐다. 섬유 TV 철강 자동차 등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상품을 차례로 문제 삼았다. 무역 보복 성격의 ‘슈퍼 301조’로 한국 시장을 열라고 압박했다. 황 전 본부장은 “국민들은 한국이 겨우 커 가는데 미국이 관세로, 쿼터(물량 제한)로 몰아치니 동맹이 맞느냐는 불만이 컸지만 한국 경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방증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내 한국 철강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자 198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 주 피츠버그의 철강업체들이 공장 문을 닫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야 그도 깨달았다고 한다.

한미 FTA의 초석은 양국 간 통상 마찰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놓였다. 2004년 6월 칠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황 전 본부장은 로버트 졸릭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마주 앉았다. 졸릭은 “통상 마찰이 길어지고 있어 양국이 모두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모든 무역장벽을 없애고 자유무역 체제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FTA 추진을 비공식 타진했다.

황 전 본부장은 당시 “FTA 말만 나와도 국회와 농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라며 조심스레 답했지만 속으로는 FTA를 통해 상호 이익이 되는 접점을 찾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이점도 컸다. 이듬해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사전실무점검회의를 잇달아 열며 FTA 추진을 공식화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분쟁에서 자국 기업인 애플의 손을 들어준 데 대해 “경제는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황 전 본부장은 “경제 관계는 안보동맹과 달리 이해집단 사이에 마찰이 불가피하고 교류가 잦아질수록 마찰이 커진다”며 “경제적 마찰을 전체 동맹 관계 차원으로 확대 해석하면 양국 관계만 악화되고 우리나라가 얻을 실익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앞으로 원자력, 에너지 등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다”며 “앞으로 한미동맹은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창조경제로 한미 윈윈하려면 기업규제 풀고 투명성 높여야” ▼

■ 태미 오버비 美 상공회의소 부회장

“자유무역협정(FTA)의 골드 스탠더드(황금기준)로 불리는 한미 FTA는 양국 경제협력의 결정판이었다. 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에서 협력할 부분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태미 오버비 미 상공회의소 부회장(55)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양국 경제협력의 어제와 내일을 이렇게 요약했다. 7, 8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 있는 오버비 부회장은 바쁜 가운데서도 3일 국제전화와 e메일을 통해 인터뷰에 응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한국이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국가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감안하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 여력이 충분하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버비 부회장은 “양국의 굳건한 안보동맹이 경제협력의 밑바탕”이라며 ‘이제 경제동맹이 거꾸로 더 굳건한 한미 결속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올해 참가 국가의 윤곽이 드러날 TPP. 미국이 주도하는 TPP는 2015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의 관세 철폐와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베트남 페루 호주 멕시코 캐나다 등 11개국이 여기에 참가하기로 했다.

오버비 부회장은 “일본이 TPP 참가를 주저하다가 한미 FTA 체결을 본 뒤 참여 요청을 할 만큼 한미 FTA의 영향이 컸다. 한미 경제협력은 이제 양자 관계를 넘어 아시아와 글로벌 경제의 관점에서도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TPP는 기존 참가국이 전원 동의해야 참가가 결정되며 일본은 참가 신청 후 이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주저했던 중국에서도 참가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조만간 참가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부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그는 “TPP를 통해 한미 FTA는 한 단계 진화할 것이 확실하다”며 “한미 FTA를 비롯한 다른 어떤 FTA에도 포함되지 않은 국영기업, 클라우드 컴퓨팅, 규제 통합, 중소기업 이슈를 (자유무역 관점에서) 다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도 여러 차례 거론했다. 오버비 부회장은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한다면 혁신을 바탕으로 한 창조경제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미 경제는 정보기술(IT) 분야와 창업 등 기업 혁신에 남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양국이 공동 이익을 찾기 위해 더 협력해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창조경제 어젠다가 양국 모두에 혜택을 주려면 기업 규제 철폐가 좀 더 필요하고 기업 활동에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하는 헌사를 요청하자 그는 한국의 우수한 인적자원 얘기를 꺼냈다.

“별 자원이 없는 한국이 단기간에 고도성장을 한 것은 인적 자본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은둔의 국가’에서 다른 나라의 ‘성장 모델’로 탈바꿈했던 길을 앞으로도 밟고 나갈 것으로 믿는다.”

오버비 부회장은 미국인들이 한국 음식 가운데 도전하기 어렵다는 된장찌개를 즐길 정도로 한국 생활에 익숙하다. 주한 미상공회의소 대표 등을 지내며 2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그는 2009년 미국으로 돌아가 미 상공회의소의 ‘넘버2’로 한미 경제협력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가장 기억나는 한국에 대한 추억을 묻자 “솔직히 지금도 한국에서 지낸 시간이 그립다. 역동적이고도 에너지 넘치는 한국인들과 함께했던 것을 가장 잊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APEC 정상회의가 끝난 뒤인 15일경 한국을 다시 찾는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한미동맹#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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