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vs 대선 공신… ‘자리 전쟁’ 불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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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출신 잇달아 공공기관장 차지
친박 “대통령 뜻과 달리 다 해먹어… 욕 먹더라도 우리가 적극 나서야”
청와대, 직접 개입 못하고 속앓이

한 친박(친박근혜) 전직 중진의원은 정권 출범 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임 사장을 내심 희망했다. 그 의사는 청와대에도 전달됐다. 정치적 무게감이나 대선 때의 역할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친박 내부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올라온 4명의 후보 명단에서 아예 빠졌다. 결국 LH 사장에는 국토교통부 출신의 이재영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이 임명됐다.

임기 초부터 시작된 대선 공신들과 관료 출신들의 자리를 둘러싼 숨은 전쟁이 수면 위로 폭발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장 자리가 주로 관료 출신들로 채워지자 대선 때 뛰었던 친박 진영에서 “고생해서 정권 잡았더니 관료들이 다 해 먹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 과거 사례를 보면 대개 정권 초기에는 ‘정치인 낙하산’ 논란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 정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관료에 힘을 실어주면서 오히려 ‘관치(官治)’와 ‘정치권 소외’ 논란이 일고 있는 양상이다.

정권 출범 전 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인 낙하산뿐 아니라 공무원 낙하산도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달됐다고 한다. 3월 발표된 18개 외청장 인사에서 파격적으로 9명이 내부에서 발탁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공공기관장 인사부터는 박 대통령이 사실상 인사권을 각 부처 장관과 해당 기관에 넘겨줬지만 전문성 있는 외부 인사를 찾으라는 대통령의 뜻과 달리 관료 출신의 장관과 대통령수석비서관, 금융기관장들을 중심으로 관료들의 자리 챙기기가 본격화했다는 게 여의도 친박 진영의 인식이다.

한 친박 의원은 “전문성이라는 조건을 채울 수 있는 건 주로 관료다. 국정철학 공유라는 건 솔직히 이명박, 노무현 정권 때 잘나가지 않았으면 누구나 충족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어찌 보면 대통령 의지와 달리 애초부터 관료들이 자리를 차지할 빌미를 준 것”이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욕을 먹더라도 우리가 적극 나섰어야 했다는 얘기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는 공공기관 인사의 문제점을 공식 제기할 경우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데다 그렇다고 정치인 낙하산이 대안이 될 수도 없어 난감한 처지다. 공공기관 인사추천위원들은 “기관장 공모에 관료 출신들이 주로 신청하는 데다 전문성을 높게 보니 관료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인 출신도 아니고 부처 공무원 출신도 아닌 참신한 인물을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하고 부처 장관들에게 이런 인사를 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기관별로 특성을 분석해 (관료든 정치권이든) 어느 곳 출신의 인사가 해당 기관장에 갔을 때 성과가 좋았는지를 살펴 그에 맞춰 인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관료#공공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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