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확보하라” 중소 - 중견기업, 고강도 세무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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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있는 중견 제조업체 A사는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는 견실한 수출 기업이다. 이 회사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순이익은 크게 줄었지만 연 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 회사 경영에 중대한 변수가 생겼다. 국세청 직원들이 본사에 들이닥쳐 세무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A사의 고위 임원은 “조사가 다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국세청 직원이 ‘지난 3년간 매출액이 1000억 원 정도 되니까 그중 1%인 10억 원 정도는 더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압박했다”면서 “근근이 불경기를 버텨 왔는데 추징액을 다 내면 운전자금이 부족해 공장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수출 중소기업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숨통이 트이길 기대했는데 오히려 세금폭탄을 맞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인 ‘지하경제의 양성화’와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세정 당국이 세금이 더 걷힐 만한 곳들을 밑바닥부터 샅샅이 뒤지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세청의 세수(稅收) 확보 노력이 중견·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는 것. 기업인과 세무사들 사이에선 “기업 규모, 탈세 수준에 관계없이 돈이 모이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세무조사가 시작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4월 중순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대(大)재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민생침해 사범 △역외 탈세 등 4개 분야에 조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며 과도한 세무조사로 인한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4월에 경제5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조세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지, 기업의 정상적 경영 활동을 제약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부의 설명과 달리 기업인들은 극심한 불만과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세무사는 “세무조사 건수도 문제지만 이른바 ‘기획 세무조사’가 늘고, 조사 강도가 세져 납세자들의 부담이 커졌다”면서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를 늘릴 기업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탈세를 막는다는 정책 취지가 아무리 옳은 것이어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세정 당국이 현장에서 ‘목표 세수’ 달성에 집착해 기업과 개인사업자를 무리하게 압박하면 경기 회복의 불씨가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기가 위축돼 세금이 안 걷히면 세무조사를 줄여야 하는 게 정상인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복지 확대 등을 위해) 세수를 늘리려면 증세를 포함한 세제 개편, 기업 투자 촉진책 같은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정호재 기자 tnf@donga.com
#세수확보#중소기업#세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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