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내부 ‘원세훈 처리’ 兩論 팽팽… 특수-공안라인 갈등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 공직선거법 적용 첨예한 대립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있느냐를 놓고 검찰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소를 앞두고 수사팀 내에서 견해 차이가 발생하는 일은 검찰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대통령선거 결과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소지를 제공할 수 있어 정치적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이번 논란이 벌어지게 된 주된 이유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 15곳에 올린 게시글과 댓글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북한이나 종북 세력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비판하는 글도 일부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이 글들이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4일 국정원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들이 지난해 대선 기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 중에는 “이정희 후보가 ‘남쪽 정부’라고 했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문재인 후보는 천안함 폭침이 아니라 침몰이라고 한다.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건지. 말이 안 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왜 자꾸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연결시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안철수 후보는 기부한다더니 왜 빨리 안 해요?”라는 댓글을 쓰거나 찬반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수사팀 내부에서는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린다. 한쪽에선 ‘일부 글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로 글을 올렸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대선을 앞둔 시기라 예민하게 보였을 뿐 대선 시기가 아니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더구나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려면 그가 직원들에게 이런 글을 쓰도록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거나 글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어야 하는데 이런 정황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수사팀의 고민이다. 또 수사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의도를 드러내는 문서나 증언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팀 일각에선 △원 전 원장의 일부 지시가 선거 개입 의도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고 △국가기관이 선거의 공정성을 해쳤다면 개인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며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악습을 끊기 위해 선거법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별수사팀은 지난주 이런 양론(兩論)을 대검찰청에 보고했고, 대검은 법무부 형사기획과로 이 상황을 전달했다. 이는 검찰이 중요 수사에서 거치는 통상 절차로, 이 과정에서 법리검토를 거쳐 의견이 조율되거나 형사처벌 수위가 결정된다. 만약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없이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전화나 서면으로 이 사건의 구체적인 처리방향을 지시했다면 수사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부적절한 행위지만 취재 결과 이 같은 일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채 총장은 3일 밤 수사팀과 저녁을 먹으며 “명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법과 원칙에 맞는 결론을 내려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4일 오전 대검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는 “검사는 수사의 최종 결과인 공소장과 불기소장으로 말해야 하고 그것이 검찰 수사의 기본임을 유념하라. 수사 관련 사항이 유출돼 수사에 지장을 주거나 검찰 업무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꼼꼼하게 증거를 판단하되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하는 ‘공안라인’과 강력한 정황과 진술이 있으면 증거가 다소 약하더라도 ‘사회 정의’ 차원에서 기소하려는 ‘특수라인’의 의견차에 대해 채 총장이 적극적으로 봉합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원 전 원장의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파장이 정치권으로 튈 것으로 보인다. 야권과 진보단체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당선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선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뜻이다. 이 사건을 향후 재·보궐선거 등에 이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당선무효 소송은 당선자가 결정된 뒤 30일 이내에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을 내더라도 당연히 각하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진보단체 등이 대법원에 당선무효 소송을 낼 경우 이 사건이 처리될 때까지는 현 정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창봉·최예나 기자 ceric@donga.com
#원세훈#공직선거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