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회의 생략… ‘군사’ 표현 빼고… 민감한 이슈 밀어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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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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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과 첫 군사협정안 국무회의서 전격통과 논란

정부가 일본과의 첫 군사협정인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서두르는 이유는 일본의 첨단 감시전력이 포착한 북한정보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받아보기 위해서다. 그동안 정부 당국자들은 “동북아 안보환경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이제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시도할 때가 됐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중요한 협정의 체결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해 “민감한 사안을 ‘쉬쉬’하며 처리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협정안을 차관회의에 올리지 않고 곧바로 국무회의에 상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충분한 여론 설득 작업도 없이 이를 밀어붙인 점도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 일본의 군사정보 공유할 제도적 틀

일본의 대북 감시능력은 한국보다 ‘몇 수 위’로 평가된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징후를 포착하고 궤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이지스구축함을 6척이나 운용하고 있다. 이 함정들은 탄도미사일을 고고도에서 요격할 수 있는 SM-3 미사일도 탑재하고 있다. 한국 해군은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이 없는 이지스구축함 2척을 실전배치한 상태다.

일본 방위성은 올 4월 작성한 ‘장거리미사일 발사검증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탐지를 위해 서해에 이지스함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일본의 북한 미사일 관련 첩보와 동향 파악이 더 정교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보유한 정찰위성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지상 6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광학위성 2기와 야간·악천후에도 촬영이 가능한 레이더위성 2기 등 모두 4기의 감시위성을 운용하고 있다. 이 정찰위성들은 북한의 핵시설과 미사일기지 등 특정 목표물을 최소 하루 한 차례 이상 정밀 촬영할 수 있다. 아울러 일본 항공자위대가 보유한 10여 대의 공중조기경보기와 육상의 장거리 대공레이더도 한반도 주변에서 신호정보(SIGINT)와 영상정보(IMIMT) 등 각종 대북 군사첩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로켓을 발사했을 때 일본이 이렇게 수집한 대북 정보는 미국을 거쳐 한국에 전달됐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군사비밀보호협정을 체결했지만 두 나라 간에는 이 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일 간 군사정보의 ‘중간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군 정보 당국자는 “분초를 다투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을 경유해 제공받는 일본의 대북 정보와 첩보는 가치가 떨어지거나 전달 과정에서 가공돼 활용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며 “한미일 3국의 대북 감시태세를 극대화하려면 한일 간에도 정보공유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민감한 협정을 왜 이런 식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극도로 민감한 문제이다.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은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서 신(新)냉전을 불러올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이들은 정부가 정보보호협정과 함께 체결을 추진해온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에 대해서도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발판을 마련해주는 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국민적 관심이 큰 만큼 국회 차원의 논의를 거쳐 처리하겠다”며 방일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또 군수지원협정의 추진은 보류하고 정보보호협정부터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당초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는 명칭에서 ‘군사’라는 표현을 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협정 체결의 추진 주체가 국방부에서 외교부로 뒤늦게 바뀌었다. 당초 국방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예상 외로 강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외교부로 이를 떠넘겼고 외교부는 얼떨결에 이를 받아든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공청회나 공개세미나 등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다음 달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방위백서가 나오기 전에 서명을 서두르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이 이미 러시아 같은 옛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해 24개국과 유사한 군사협정을 체결할 때에도 공청회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며 압박한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도 “미국이 등을 떼밀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안보에 필요해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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