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세종시다]행정도시 밑그림 뒤 우여곡절 1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2002년 9월 30일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은 이성계의 계룡산 천도(遷都) 600여 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천도 검토 40년 만의 일이다.

태조는 왕정 강화, 박 전 대통령은 안보가 천도 추진의 배경이었다면 노 전 대통령은 국토의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공통점은 천도 후보지가 모두 충청권이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의 구상은 참여정부 출범 후인 2003년 12월 충남 연기와 공주에 16부 4처 3청을 이전하는 내용의 신행정수도건설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가시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 총선 직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여야가 이전 대상을 ‘9부 2처 2청’으로 줄이는 안에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선 박세일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는 등 심각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수도 이전을 놓고 또 한 차례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는 여권의 손을 들어줬고 노 전 대통령 임기 후반인 2007년 7월 마침내 ‘세종시’로 이름 붙여진 행정도시 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종시는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한다. 2009년 9월 당시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세종시 계획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데 이르게 됐다.

“저 하나가 불편하고, 욕먹고, 정치적으로 손해보더라도 이것(수정)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교육과학중심의 경제(기업)도시가 지역민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더욱 효과가 있다며 반대세력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국토균형발전’과 ‘약속이행’이라는 거대담론과 원칙을 내세운 정치권 및 충청권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행정도시 밑그림이 그려진 지 10년 만에 세종시가 출범한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세종시가 당초 행정도시건설특별법에 따라 예정지역만을 대상으로 개발행위가 이뤄지다 보니 잔여지역과 편입지역에 대한 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할 세종시가 지역 내에서조차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면 또 다른 아이러니가 되기 때문이다.

세종=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