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전방위 사찰 일파만파]민간인 사찰, 총선 뒤흔들 ‘核뇌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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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李대통령 하야 논의할 시점”… 박근혜 “지위고하 막론 책임자 엄벌”
총리실 전방위 사찰 드러나… 與비대위 “靑 알았다면 해명을”

4·11총선을 코앞에 두고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이 총선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30일 새벽 유튜브 방송인 ‘리셋 KBS 뉴스9’를 통해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의 2008∼2010년 사찰 문건 2619건을 입수해 일부를 공개했다. 여기엔 조현오 경찰청장 등 공직자에 대한 복무동향 보고서뿐 아니라 야당 국회의원, 삼성고른기회 장학재단 등 재계 관계자, 언론인, 노동조합원, 사업가 등 민간인에 대해 전방위 사찰을 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청와대 하명사건’이라고 표기된 문건들에는 KBS와 MBC, YTN 등 방송사 사장들과 관련된 보고서가 포함됐다. 사정기관 고위 간부의 경우 불륜행적이 분(分) 단위로 기록돼 있다.

민주통합당은 30일 ‘대통령 하야’까지 거론하며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MB(이명박)정권-새누리당 심판 국민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전 최고위원은 선거대책회의에서 사찰 관련 문건을 제시하면서 “청와대 지시임을 입증하는 ‘BH(청와대) 하명’이라고 돼 있다”며 “범국민적으로 대통령 하야를 논의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총선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상돈, 이준석, 조동성 등 새누리당 비대위원 5명은 이날 모임을 갖고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는 공동 발표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박근혜 위원장도 그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면서 “만약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며, 알고 있었다면 청와대의 즉각적이고도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민주 “한국판 워터게이트… 국기문란” 총공세 ▼
새누리 “黨과 무관”… MB정부와 결별 나설듯
靑 “지나친 정치공세 자제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이상일 대변인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실태가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며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할 것이며 수사가 미흡하다는 판단이 들면 다른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권과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총리실은 KBS 노조가 폭로한 불법사찰 내부 문건과 관련해 “2010년 7월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검찰이 압수해 확인 조사한 뒤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자료다.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부분은 기소하고 인정되지 않은 부분은 내사종결 처리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총리실 관계자는 “점검1팀 소속 5명이 2년간 2600여 건을 사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첩보이거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동향 파악을 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 총공세 나선 민주당

민주당은 불법사찰 논란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민감한 젊은층과 수도권 유권자의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강원 지역 선거유세에 나선 한명숙 대표는 강원도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희대의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문제는 이런 사찰 결과가 VIP(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이란 점”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MB-새누리당 심판 국민위’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찰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존재하는 한 검찰수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고 국민들이 그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권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박영선 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한국판 워터게이트’”라며 “검찰이 1차 수사 때 청와대와의 연결고리를 자르거나 축소수사했다. 당시 기소된 7명에 대한 변호사 비용을 누가 댔는지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성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있으면 여야 공동으로 탄핵 절차를 밟을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도 “사찰로 유지된 정권, 이제 내놓으라”(트위터)고 가세했다.

○ 당혹 속 파장 지켜보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이날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주재로 비공개 일일현안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숙의했다. 일단 사찰 대상에 여권 관계자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들어 “당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남경필 정두언 의원이 사찰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용퇴를 주장했던 정태근 의원(현재는 무소속)과 식사 자리를 두 차례 가졌던 개인사업가 박모 씨도 사찰 대상이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전역 유세에서 기자들을 만나 “민간인 사찰은 반드시 근절돼야 할 중대한 문제”라며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책임 있는 사람은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를 계기로 당이 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등 ‘당청 결별’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태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 정부와 단절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란 얘기다.

○ 침묵하는 청와대


청와대는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된 만큼 가타부타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새누리당 대신에 청와대가 민주당의 총선 상대로 구도가 짜이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청와대는 민주당 박영선 위원장이 ‘대통령 하야’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무리하고 지나친 정치공세를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내부적으로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 내용을 공식 또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청와대 일부 인사에게 보고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법원이 ‘정상적인 업무로 진행된 민간인 조사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지난해 판시했다”면서 “이번 사건이 불법으로 비쳐선 안 되는데…”라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민간인인 의사나 사업가도 불법 사찰을 당했다는 대목을 두고 한 얘기였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4·11총선#민간인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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