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미디어]1994년엔 YS-장쩌민 수시 통화… MB-후진타오는 불통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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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 때와 비교해보니

19일 낮 12시, 갑작스러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과 후속 상황은 17년 전인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이 슬퍼하는 표정이나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 등은 17년 전과 차이를 보인다.

○ 대북 첩보 혼선은 닮은꼴

1994년 7월 9일 오전 11시. 청와대 인근 남북대화사무국에는 김덕 국가안전기획부장(안기부장),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 정종욱 대통령외교안보수석 등 대북 정보라인의 핵심들이 모였다. 2주를 앞둔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 이때 안기부장이 받은 메모에는 ‘북한 조선중앙TV가 정오에 특별 방송을 한다’고 적혀 있었다.

박관용 당시 비서실장은 14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메모를 받고서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며 “12시 방송을 보고서야 김일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이자 당시 실세였던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아버지도 김일성 사망에 대해 사전에 보고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형근 당시 안기부 1국장(대북 정보 담당)은 최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신변과 관련된 이상 징후가 포착됐고 새벽에 대통령께 상황 분석이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7년이 지난 최근에도 유사한 현상이 빚어졌다. 김 위원장 관련 첩보를 청와대가 보고 받고도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17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국정원이 김정일 사망 관련 첩보를 청와대에 알렸지만 청와대가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라’며 묵살했다”고 말했다. 또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발표 전 ‘모든 훈련을 중지하고 소속 부대로 복귀하라’는 ‘명령 1호’를 내렸으나 우리 정보 라인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북한 주민들의 표정

지도자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북한 주민들의 겉표정은 17년 전과 비슷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에서 만난 한 탈북자는 “김정일 사망 직후 북한에 있는 주민과 휴대전화로 통화했는데 평양 사람들은 좀 슬퍼하지만 지방 사람들은 좋아서 난리라더라”고 전했다.

▶(영상)탈북자 “평양만 먹여 살리니…지방은 좋아서 난리”

반면 17년 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북한 전역에서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탈북자들은 밝혔다. 2007년 탈북해 경기 파주시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너무 많이 울어서 실신하는 사람이 속출했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죽음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북한의 중국 쏠림 심화될 것

전문가들은 북한의 중국 쏠림 현상은 17년 전보다 더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에 북한과 다소 불편한 관계였다. 반대로 대한민국과는 수교 2년을 맞아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었다. 박관용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김영삼 대통령과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하루에 2통씩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과 통화를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북한의 중국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기용 채널A 기자 kky@donga.com  
이설 채널A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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