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임태희 퇴장 ‘與 지각변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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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당 새롭게 태어나길”… 불출마 선언, 사실상 은퇴

박근혜 등판 길터주기 관측… 새 대통령실장에 하금열

이명박 정부의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해온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11일 물러났다. 또 이 대통령의 친형인 6선의 한나라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내년 19대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전면 부상이 임박한 점과 맞물려 여권에 거대한 권력 이동과 물갈이 및 새판 짜기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 실장의 후임으로 하금열 SBS 상임고문을 내정하는 등 청와대 진용을 개편했다.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에는 노연홍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수석급인 총무기획관에는 장다사로 대통령실 기획관리실장, 기획관리실장에는 이동우 대통령실 정책기획관이 각각 내정됐다. 임 실장과 함께 물러나는 백용호 정책실장의 후임은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두기로 했다.

임 실장 교체는 당초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이후 연말쯤이라던 시점을 앞당긴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신조어를 낳았던 이 전 부의장(경북 포항 남-울릉)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의 쇄신과 화합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총선 불출마와 사실상의 정계은퇴 의사를 밝혔다. 이와 별도로 초선인 홍정욱 의원(서울 노원병)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작심한 ‘형님’, 불출마 도미노 물꼬 되나 ▼

임태희 실장 교체와 이상득 전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 선언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한 여권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보수정당’이 키워드가 될 지각변동은 박근혜 전 대표의 활동반경, 대선 주자급 인사들의 협력과 경쟁, 옛 정치질서를 상징하는 의원들의 2선 후퇴 규모가 관전 포인트다. MB(이명박) 진영이 박 전 대표의 등판에 앞서 ‘길 터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 전 대표와 ‘질긴 애증의 인연’을 맺어온 이재오 전 특임장관도 이날 박근혜 체제를 통한 당 쇄신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 전 장관의 측근은 기자들에게 “(이 전 장관은) 비상대책위원회든 뭐든 박 전 대표 주도하에 현재의 비상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주도권을 놓고 박 전 대표와 정면승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과는 거리가 있는 말이다. 이 전 장관은 전날 트위터에 “지도력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찾으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작은 차이에 집착하지 말고 서로가 대의에 충실하면 된다”는 글을 올려 통합을 강조했다.

또 대통령 특보단 가운데 이미 물러난 박형준 전 특보(사회) 이외에 김덕룡(사회통합) 유인촌(문화) 이동관(언론) 김영순 특보(여성)가 이날 특보직에서 물러났다. 이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해온 이동관, 박형준 전 특보는 총선 출마를 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주변 정리’엔 현 여권이 처한 위기 상황이 그만큼 크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 전 부의장의 불출마 선언은 이 대통령과의 교감 속에 나온 것으로 파악돼 범여권의 재편이 매머드급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본보 10일자 A2면 이상득 내주초 정계은퇴 선언


이 전 부의장은 임 실장과 김효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나의 불출마가 당 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의장은 당초 9일로 잡았다가 이날로 미룬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억측과 비난을 받을 때 가슴이 아팠지만 묵묵히 소임을 다하면서 올바른 몸가짐을 갖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만, 자신의 보좌관이 7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대해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 전 부의장은 “옛말의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는 글로 제 심정을 밝혀 드린다”고 했다. 노자(老子)의 한 구절인 이 말은 “하늘이 친 그물은 눈이 성기지만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잘못이 있다면 결국 처벌받게 될 것이란 점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한 말이다.

임 실장은 퇴임 후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정치 진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경기 성남 분당을로 복귀해 내년 총선을 준비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정국 전개에 따라 당의 강력한 요청이 있으면 서울·경기지역에서 출마하거나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여권에선 ‘불출마 도미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홍정욱 의원은 “지난 4년은 나에게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국가의 비전과 국민의 비전 간에 단절된 끈을 잇지 못했다”며 “이제 어울림 없는 옷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한나라당의 불출마 선언 정치인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 원희룡 전 최고위원 등 4명으로 늘어났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주도권을 쥔 당 개혁 작업 과정에서 고령 다선 의원이 다수 포진한 친박(친박근혜)계가 ‘동조 불출마’를 강하게 압박받게 됐다”는 시각이 많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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