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협상파 13명 “직권상정해도 표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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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FTA협상파 29명 설문… 野는 익명요구 1명만 “표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자 ‘협상에 의한 합의 처리’를 주장해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온건·협상파 의원들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 중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의장이 비준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면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 의원 대부분은 직권상정에 의한 표결 처리는 저지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아일보가 20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온건·협상파’ 의원 44명 중 29명(한나라당 16명, 민주당 13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한 결과다. 한나라당에선 지난해 12월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 불참’ 의사를 밝히며 서명한 의원 21명이, 민주당에선 “대화와 타협의 국회를 만들자”며 ‘민주적 국회 운영모임’을 결성한 23명이 ‘온건·협상파’로 통한다.

여야의 합의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에서 의장의 직권 상정이 있을 경우 표결에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 한나라당은 설문에 응한 16명 중 13명이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이한구 의원은 “야당에 대해서 할 만큼 했고 국익과 관련된 사안을 언제까지 묶어둘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도 “지난해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성명에) 서명했을 때도 표결에는 참여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성윤환 의원은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의결정족수를 채우겠다”고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몸싸움이 진행되면 기권을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갈라진 협상파… “표결때 몸싸움 참여” 한나라 0명-민주 9명 ▼

주광덕 의원은 “21일 한나라당 협상파 의원들이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만나기로 했다.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홍정욱 의원은 “표결 처리라는 기본 방침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나는 (합의 처리를 위한) 여야 6인 협의체 멤버이기 때문에 직권상정을 전제로는 얘기할 수 없다”며 응답을 거부했다.

권영진 의원만이 “(직권상정 이후) 몸싸움이 일어나면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다만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표결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상정을 했을 때 야당이 투표 거부 등 소극적으로 저항할 경우에만 표결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 의원 중 “(직권상정에 따른) 표결에 참여해 소신을 밝히겠다”는 의원은 1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의원도 익명을 요구했다. 반면 8명이 직권상정할 경우 “참여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원혜영 의원은 “여야가 직권상정 제한 등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상황인 만큼 직권상정에 의한 표결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론을 따르겠다”는 의견(4명)도 있었다. 강봉균 의원은 “표결 참가 여부는 당에서 정하는 것이다. 한-EU FTA 비준안 처리 때는 (당론에 따라) 불참했다”며 전례를 들었다.

○ 한나라당 “몸싸움 불참”, 민주당 “저지”


설문에 응한 한나라당 의원 16명 중 12명이 몸싸움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이들이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몸싸움의 범위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김선동 의원은 “투표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것이 (야당 보좌관들에 의해) 제지당할 때 뚫고 가는 것은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장석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에는 가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병국 의원과 진영 의원은 “의원들끼리 몸싸움을 안 하게 만들기 위해, 먼저 의장이 국회법에 따라 공권력을 동원해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나라당이 표결을 강행할 경우 저지에 가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9명의 의원이 “그렇다”고 답했다. 한미 FTA는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날치기해선 안 되며 여당이 일방 처리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토론하자’는 생각이지만 한나라당에서 물리적 처리를 강행한다면 방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종표 의원은 “직권상정이 몸싸움의 원인”이라며 여당에 몸싸움의 책임을 돌렸다.

반면 물리적 저지에 불참하겠다는 의원은 2명에 불과했다 이 중 한 의원은 “지금 독립운동 하는 시대도 아니고 군사독재도 아닌데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은수 의원도 불참 의사를 밝혔지만 이는 박 의원이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서명 의원들은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야 온건·협상파 의원 중 다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총선 불출마 등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원은 없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시 서명 취지가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면 무조건 불출마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권영진 의원은 “내가 표결에 참여하고, 몸싸움이 일어날 경우 깨끗하게 불출마를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처럼 총선 불출마 자체를 거론한 적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김재윤 의원은 “한미 FTA는 소신과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與, 폭력 처리라도 막아보자


한나라당은 이제는 폭력 사태라도 막아보자는 쪽으로 출구전략을 세웠다.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김정권 사무총장은 20일 기자들에게 “몸싸움을 아예 안 하는 건 안 될 것 같고 최소화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또 “(표결)처리할 때 한 번에 해야지. 하려고 했다가 말았다가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 후 FTA 비준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것에 대해선 “(민주당이) 예산은 다 챙기면서 FTA는 안 해주겠다는 거 아니냐”며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 등을 상대로 “다시 국회 내 폭력사태가 일어나면 여야가 공멸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설득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온건·협상파 의원들이 물리적 저지에 가담하지 않으면 의장석 점거 등에 실제로 가담할 야당 의원 수가 크게 줄어들어 야당 보좌진들의 국회 본청 출입만 막으면 큰 충돌 없이 표결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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