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 없으면 복지도 없다? 정치권 속보이는 ‘입법 중인 복지법안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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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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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 15조4889억 VS 아동복지 30억

‘노인복지는 우대, 아동복지는 외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노인 표를 의식한 복지법안은 신속하게 처리되는 반면에 아동을 위한 법안은 뒤로 밀리고 있다.

○ 노인 법안은 일사천리, 아동은 미적

지난달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발의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은 전국 경로당에 양곡 구입비와 냉난방 비용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발의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여야 간에 이견이 없어 28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이어 본회의 통과까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아동복지 관련 법안의 처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같은 날 상임위를 통과한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지난해 5월 발의됐다. 역시 이날 상임위 문턱을 넘은 ‘아동복지법 개정안’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사정은 비슷하다(표 참조).

28일 단 하루 열리는 법사위에서 이 법안들이 모두 논의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상임위를 통과한 아동복지법안들은 주로 기본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라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지만 표가 안 된다는 이유로 늘 논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꼬집었다.

○ 노인 15조4889억 원 vs 아동 30억 원

노인복지법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는 경로당 1곳에 연평균 47만 원씩의 쌀 구입비와 냉난방비 100만∼200만 원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2012년 820억 원, 2013년 860억 원, 2015년에는 1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간다.

올해 아동복지 전체 예산은 1750억 원. 전체 복지부 예산의 0.5%에 불과하다. 개정안에 따른 경로당 운영 예산 하나만 해도 아동복지 전체 예산의 절반에 이른다. 노인복지 전체 예산은 3조7130억 원으로 아동복지 예산의 20배가 넘는다. 여기에다 여야는 기초노령연금액도 너나 없이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5%를 지원한다.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 등은 이를 2012년 6%, 2013년 7% 등으로 1년마다 1%씩 늘려 2016년까지 10%로 늘리는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인복지법과 치매예방관리법,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 등 현재 입법 과정에 있는 노인 관련 법안들이 향후 5년간 필요로 하는 예산을 합치면 15조4889억 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입법과정에 있는 아동복지법안 3개의 5년간 예산은 30억 원 이하다.

○ 표만 의식하다 복지 불균형

정치권의 일방적인 법 개정 추진에 정부는 난감한 표정이다. 경로당 운영은 2004년 10월 운영 주체가 정부에서 지자체로 바뀌었다.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로당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임이 생겨 더 많은 국가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복지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의 경로당은 6만여 곳이다. 투표율이 높은 노인들이 모이는 경로당은 정치인들에겐 놓칠 수 없는 표밭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의 예산 배분 기능이 표에 좌우되다 보니 투표권이 없는 아동에 대한 복지가 소홀해졌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은 아동에 대한 지원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긴다”며 “아동 복지가 노인 복지에 밀리는 것은 아직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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