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원심분리기 2000개 가동”]헤커가 본 北원심분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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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된 50m 플랫폼에 3열로 정렬”

2002년 10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존재는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8년 이상을 끌어왔다.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은 12일 육안으로 원심분리기가 가동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던 곳은 1990년 초부터 20년간 미국이 밤낮으로 감시해 온 영변 핵시설 내에 있었다. 헤커 소장은 이번까지 모두 4차례 영변 핵시설을 방문했다.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를 이끌었던 헤커 소장은 20일 스탠퍼드대 홈페이지에 공개한 방북보고서에서 원심분리기를 갖춘 농축우라늄 시설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다. 헤커 소장은 ‘미스터 북핵’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 8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헤커 소장은 “고작 몇 개의 원심분리기를 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현대식의 깔끔한 시설에 1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가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2층으로 된 50m 길이의 플랫폼에 3열로 원심분리기가 놓여 있었다”며 “북한 당국자에 따르면 2009년 4월 착공해 며칠 전에 가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원심분리기는 지름 20cm에 높이 1.82m의 원통형이었다. 헤커 소장은 “파키스탄이 개발하고 이란이 사용하고 있는 P-1형 원심분리기는 아니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었다”며 “독일과 일본 모델에 착안해 북한이 자체 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헤커 소장은 ‘가장 중요한 사실’로 “북한의 농축 능력은 분리작업단위(SWU)당 연간 8000kg의 저농축우라늄(3.5%)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 능력이라면 저농축우라늄(LEU)을 최대 2t까지 생산할 수 있고 최대 40kg의 HEU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 1기를 만드는 데 농축도 90%의 HEU 25kg 정도가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연간 2기 정도가 생산된다는 뜻.

헤커 소장은 “북한은 원심분리기가 LEU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며 “하지만 이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방식은 언제든 HEU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영변에 짓고 있는 25∼30MW의 경수로 건설이 올해 7월 31일 시작됐다는 사실도 새롭게 공개했다. 헤커 소장은 “우라늄 농축시설이 설치된 속도를 보면 북한이 파키스탄 및 이란과 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며 “핵확산의 위협도 더욱 커진 셈”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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