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인사위’ 언급도 안해… 與 외부참여 확대안 우회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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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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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개혁안 공개… “정치권 논의 적극참여”

고법 상고심사부 설치
5곳에 법원장 등으로 구성… 부적절한 상고 걸러내

법관 연임심사 강화
근무평정 결과 실질 반영… 세분화된 윤리장전 마련

판결문 전면 공개
외부서 요청하면 언제든 수용…전자소송 2012년 민사로 확대


대법원이 25일 내놓은 자체 사법제도 개선안은 대법관 증원과 외부인사 참여를 확대하는 법관인사위원회 설치, 양형기준법 제정 등 17일 한나라당이 발표한 법원 개혁방안의 핵심내용 대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판결문 전면공개 등 법원 외부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데다 앞으로 국회에서의 사법개혁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사법부와 정치권의 마찰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았다.

○ 투명성 높이되 법관인사권은 유지

대법원은 사법시스템의 투명성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수용해 판결문 전면 공개, 전자소송 도입 확대 등 전향적인 방안들을 내놓았다. 우선 판결문 공개 문제는 대한변호사협회와 국회도서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판결문의 제공을 요청할 경우 언제든지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인터넷을 통한 소장 제출, 기록 열람, 서류 송달이 가능한 전자소송도 다음 달 특허소송부터 적용한 뒤 2012년에는 모든 민사소송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구조 변경이나 법관인사권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이 중심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나라당의 방안들을 사실상 거부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법원은 우선 전국 5개 고등법원에 상고심사부를 설치해 부적절한 상고를 미리 걸러내기로 했다. 현재 상고심 파기환송률은 6% 정도에 불과하고 전체 상고의 90%가량은 법에 규정된 상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상고심사부를 두면 대법원의 재판부담이 크게 낮아지고 심리불속행 제도(법적인 상고 이유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제도)를 폐지할 수 있어 충실한 재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또 상고심사를 할 때 모든 소송당사자가 법정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고 인지비용도 2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재판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이는 한나라당이 상고심 기능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4명으로 크게 늘리려는 데 맞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원이 상고심사부 판사에 법원장을 지낸 고위 법관을 배치하고 일부는 경력 15년 이상인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출신 가운데 선발하기로 한 것도 한나라당의 대법원 개혁구상을 반박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앞서 대법관 요건을 기존의 법조경력 15년이 넘는 40세 이상 법조인에서 경력 20년, 45세 이상으로 강화하고 대법원 구성 다양화를 위해 대법관 중 3분의 1을 비(非)법관 출신으로 뽑자고 제안했다.

대법원은 한나라당과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인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법관인사위원회에 법관 보직·전보 인사권을 넘기는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근무평정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등 법관 연임심사를 강화하고 다소 추상적이던 기존의 법관윤리강령을 구체화한 윤리장전을 제정하는 등 법원 내부의 자정(自淨)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리장전에는 정치후원금 기부 여부나 부조금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할 예정이다.

대법원 산하의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고 양형기준법을 제정하는 등 법관의 재량을 축소하겠다는 한나라당 측 안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관련 법안이 나오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 사법부-여권 갈등 타협점 찾을까

대법원은 정치권의 사법개혁 논의에 대해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진행방식은 부적절하다”던 기존 태도에서 물러나 앞으로 관련 입법 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부와 정치권이) 계속 평행선을 달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대법원도 동참해서 의견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선 의견(자체개혁안)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또 다음 달 20일 열릴 예정인 국회 공청회 일정에 맞춰 좀 더 구체적인 사법제도 개선방안을 추가로 낼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인 이주영 의원은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사법부의 개혁안으로는 미흡하다고 본다”면서도 “사법부에서 내놓은 안까지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같이 다뤄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태도 변화에는 계속 수수방관만 하다가는 이후 사법개혁 논의에서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당초 26일 사법정책자문위원회의 최종보고서 발표에 맞춰 공식 입장을 밝히려던 계획을 바꿔 하루 일찍 자체 개혁안을 내놓은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주요 쟁점에서 사법부와 한나라당의 견해차가 매우 커서 실제 합의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법관 인사권이나 대법관 증원, 법관의 양형재량 문제 등은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성과 직결돼 있어 양보하기 어렵다”는 태도여서 한나라당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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