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혁’ 얼차려에 바짝 군기 든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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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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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긴장풀렸다” 잇단 경고
국방부 요직에 민간인 발탁
군납 비리도 전방위 수사
軍 “올 것이 왔다” 전전긍긍

이명박 정부의 군 개혁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올해 하반기 들어 부쩍 군을 비판하면서 군 안팎에선 이미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교수 출신의 국방부 실장 발탁이 현실화되고 민간인 중심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발족하자 군 관계자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며 숨을 죽이고 있다.

○ 몰아붙이는 청와대

이 대통령은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이제 ‘고효율의 다기능 군’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선도적으로 변화하고 대응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강한 군대는 좋은 무기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강고한 정신력과 군인정신에서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군에 ‘효율성’ ‘변화’ ‘정신력’을 요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11월 3일 민간인이 철책을 절단해 월북한 사건이 10월 말에 발생한 것과 관련해 “6·25 이후 휴전 상황이 오래 지속돼 우리 군의 긴장이 풀린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질타했다. 이달 8일 국무회의에서는 최근 잇단 군납비리 의혹에 대해 “현재의 구조에는 근원적으로 비리가 생길 틈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라며 “획기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과 군 검찰이 최근 각종 군 관련 비리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벌이는 것도 청와대의 군 개혁 드라이브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리 적발을 통해 군 개혁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사 대상 업체만 3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검찰이 4년 동안 수사했지만 번번이 무혐의 등으로 종결된 계룡대 군납 비리 사건을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재수사해 11월 4명을 구속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군 비리 척결 의지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감사원도 최근 무기획득체계에 대한 전방위 감사를 벌여 문제점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군은 국산기술로 개발한 최신 무기들이 잇달아 문제점을 드러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차세대 전차 K-2(흑표)는 시험평가 도중 파워팩(엔진+미션)의 결함이 나타나 생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차기보병장갑차인 K-21은 도하훈련 중에 엔진이 멎었고, 총포탄약시험장에서는 155mm 고폭탄이 신관 오작동으로 폭발해 6명의 사상자를 냈다.

정부 관계자는 “군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은 단순히 군납비리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며 “군의 폐쇄성, 집단이기주의, 파벌주의 등 고질화된 군 내부 풍토가 선진화를 가로막은 요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청와대와 군이 이견을 보인 주요 현안

청와대의 군 개혁 드라이브는 그동안 청와대와 군이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군과 마찰을 빚으면서 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느 분야를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2005년 송파신도시 건설이 발표되면서 군은 신도시 내 특전사령부와 남성대 골프장 등을 이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국방부는 안보상황의 변화를 이유로 당초 이전 계획을 재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논란 끝에 올해 7월 남성대 골프장의 대체 용지를 정부가 마련해주는 조건으로 2012년까지 경기 이천시로 특전사를 옮기기로 확정했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신축을 놓고도 청와대와 국방부는 이견을 보였다. 국방부는 성남비행장 비행안전구역에 555m 높이의 112층짜리 초고층빌딩이 세워질 경우 전투기의 이·착륙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건설 허용 방침을 정하자 활주로 방향을 3도가량 트는 비용을 롯데 측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허용 방침을 받아들였다.

올해 8월 논란이 된 이상희 전 장관과 장수만 차관의 갈등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대리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전 장관이 군을 대표하고, 장 차관이 청와대를 대변하는 양상이었다. 2010년도 국방 예산을 놓고 청와대는 삭감을, 국방부는 원안 고수를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이 대통령에게 예산 삭감은 안 된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면서 장 차관이 자신과 상의 없이 군 예산 삭감을 청와대와 상의했다는 이유로 ‘하극상’이란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국방 예산은 당초 국방부 원안에서 3.8% 삭감됐다. 이 전 장관은 교체됐고 장 차관은 유임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 인사는 청와대의 군 개혁 의지가 강하다는 메시지를 군에 전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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