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후원금 부활 꾀하면서 폭력의원 제재 법제화는 묵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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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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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개특위 합의내용 분석

● 정치권 편의적 발상
‘불법자금 관용’ 사실상 면죄부
‘90일 의원’ 허용해 세비 축내

핵심 쟁점은 여론 저울질
‘기업 기탁금’ 공감하지만 머뭇
지구당 복원은 여야 득실계산

비현실적 규제는 풀어
의정보고회 음료 제공 허용
‘명함 돌리기’ 돕는 사람도 늘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정치개혁 관련법 개정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 특위 위원들은 이미 불법 정치자금 제공자가 자진 신고하면 형을 감면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이 자진 반납할 경우엔 처벌을 면제하는 것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다만 법인과 단체의 기탁금 허용, 지구당 부활 등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선 막판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국회는 올해 안에 정개특위가 내놓을 정치개혁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 합의 내용, 논란될 듯


정개특위가 이미 합의한 내용 가운데 일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불법 정치자금 제공자가 수사기관이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진 신고하면 형을 감면받고, 자진 반납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처벌을 면제받도록 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불법 정치자금의 제공자와 수수자는 모두 처벌받는다. 자진 신고자에게 형을 감면해 주면 내부자 고발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하는 측면이 있지만 불법 정치자금 제공자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상 불법 정치자금을 30일 이내에 자진 반납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에 형사처벌 면제 조항을 추가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처벌 여부 등은 반환 정황을 감안해 수사기관이 판단하도록 해야지, 아예 처벌 자체를 막는 것은 정치인에 대한 과잉보호라는 반론도 나온다.

폭력 국회를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거나 기물 파손으로 처벌받은 자는 당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은 개혁 원칙의 훼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개특위 내부에서는 “현행 각 당의 당헌 당규로 자율 규제될 수 있는데 법률로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헌 당규로 이를 자율 규제할 정당이 사실상 없을 것인 만큼 “정치권의 편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일 전 180일 이내에 비례대표 결원이 생길 경우에는 의석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 규정을 90일 이내로 앞당기기로 한 것도 문제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의원직을 승계한 의원은 사실상 의정활동 없이 세비 등을 받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구당 부활, 법인기부 허용 ‘빅딜’하나

한나라당 허태열 장윤석, 민주당 김충조 서갑원 의원 등은 15일부터 18일까지 정개특위가 합의하지 않은 쟁점 사항을 놓고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남은 쟁점 가운데 △법인과 단체의 기탁금 허용 △지구당의 부활 여부 등은 이른바 ‘오세훈법’의 핵심 내용이다. 이 때문에 여야 간 ‘빅딜’로 정치개혁 관련법의 원칙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법상 법인과 단체는 정당이나 정치인, 후원회에 정치자금을 직간접적으로 기부할 수 없다. 특히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지급하도록 정하는 지정 기탁금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법인이나 단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선관위에 정치자금을 기탁하면 이 돈을 법률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하는 형태의 ‘비지정’ 기탁금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소액 기부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현행 제도는 영수증 발급 등에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법인과 단체의 편법적인 정치자금 제공을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여야는 당론으로 비지정 기탁금을 허용하자는 주장에는 부담을 느끼지만 정치자금의 숨통을 틔워 준다는 점에서 법 개정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허용에 대한 당 안팎의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한 정개특위 위원은 “법인과 단체의 기부 허용은 개혁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원협의회를 사실상 옛 지구당 형태로 부활하는 문제도 변수다. 현재 당원협의회와 관련해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는 다소 유연한 편이다. 원외가 많은 민주당으로서는 당원협의회의 활동을 현실화할 경우 한나라당의 현역 의원에 맞설 후보자의 정치활동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선 반대 의견이 우세하지만 당원협의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앙선관위와 국회 정개특위 전문위원은 “지구당 복원 문제는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하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 규제 일변도의 선거 관련법 일부 해소

정치권 안팎에서 그동안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어 온 공직선거법 일부 조항을 손질한 것은 성과라면 성과다. 일부 조항은 자의적인 법 적용이 가능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정개특위는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규제 일변도의 선거 관련법 일부 조항을 개정하는 데 합의했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운동원에 대한 기부행위 금지 조항이다. 현행법은 어떤 형태의 기부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운동원에게 어느 정도의 편의 제공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정개특위는 선거운동원에게 최소한의 교통 편의와 여비, 다과류를 제공하는 방안을 허용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향후 논란이 일 수 있다. 사전선거운동 때 예비후보자와 배우자, 지정인 1명에게만 명함을 돌리도록 한 것도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있었다. 정개특위는 직계존비속과 선거사무장, 사무원의 명함 배포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흔들리는 ‘오세훈법’
‘깨끗한 정치’ 길 열었지만
“자금조달 너무 엄격” 원성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이번에 손대려는 정치관계법의 주요 내용은 이른바 ‘오세훈법’에 해당되는 것이다. 2004년 3월 16대 국회 막바지에 당시 국회 정개특위 한나라당 간사이던 오세훈 의원(현 서울시장)은 ‘돈은 막고 입은 푼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정치자금에 관한 법, 정당법의 파격적인 개정을 주도했다. 정도 차는 있었지만 여야 모두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비켜갈 수 없어서 ‘오세훈법’을 받아들였다.

오세훈법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자금을 받는 기존 정치권의 관행에 칼을 댄 것이다. 우선 정치자금과 관련해 현역 국회의원만 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모금 한도 총액도 1년에 1억5000만 원(선거가 있는 해는 3억 원)으로 제한했다. 후원회 행사와 법인·단체 후원도 금지해 개인이 아닌 기업으로부터는 아예 돈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정당 지구당도 ‘돈 많이 드는 정치’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폐지했다.

그러나 한 달 후 이 법으로 실시된 17대 총선 직후 정치권에선 ‘현실과 맞지 않다’는 아우성이 쏟아져 나왔다. ‘깨끗한 정치’라는 방향은 맞지만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이었다.

예를 들어 선거법에서 후보자만 어깨띠를 매도록 한 것이나 후보자 명함을 배포하는 사람까지 제한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돈뿐 아니라 ‘말과 발’마저 묶어 선거운동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원외 정치인과 정치 신인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져 “돈 많은 사람만 정치하라는 말이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그동안 오세훈법을 고치려는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치 개혁 후퇴’라는 여론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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