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계좌추적권 신설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고위공직자 부패 조사에 필요” 개정안 입법예고
변협 “영장없이 금융거래 조사하는 건 권한남용”

국민권익위원회가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조사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계좌추적권 신설을 추진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권익위는 25일 이런 내용의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요구권)은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는 현행 금융거래실명제에서 관련 기관이 불법행위나 부당거래를 수사 또는 조사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예외적인 권한이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세청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거래소 등이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99년 한시적으로 계좌추적권을 확보한 뒤 계속 연장해 2010년까지 계좌추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검찰은 계좌추적을 하려면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한다.

권익위의 개정안에 따르면 권익위는 고위공직자의 부패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거래 정보 등을 요구하고 금융기관은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권익위는 또 부패 신고자와 피신고자, 이해관계인, 참고인, 관련 공직자 등을 불러 의견 진술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시켰다.

권익위는 공공기관과 공직자의 청렴도를 평가하기 위해 해당 기관에 공직자의 병역과 출입국, 국적, 범죄 경력, 부동산 거래, 납세, 재산등록, 징계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넣었다. 아울러 현재 국무총리 소속인 권익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바꿔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위원장이 필요한 경우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하고 각종 사무에 대해 국무총리에게 의안 제출을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평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검찰과 경찰조차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야만 금융거래기록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며 “권익위의 법률 개정 방침은 금융거래정보에 관한 영장주의 원칙에 예외를 확대하게 돼 국민의 사생활 보호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한 검찰 간부는 “권익위가 계좌추적권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상 수사를 하겠다는 얘기”라며 “고위공직자라 해도 판사가 발부한 영장 없이 금융거래 내용을 뒤질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은 헌법 위배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