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中총리의 방북과 김정일의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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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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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북한 방문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확실한 성과를 낳은 성공작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나름대로 중국만의 이유가 있다.

지난달 18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다이 특사에게 “북한은 양자 또는 다자간 방식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북한이 말하는 다자회담이 6자회담인지, 북한이 다시 6자회담에 참가할 때 어떤 요구를 할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원 총리는 평양방문을 통해 이 두 문제를 ‘사실상’ 명확히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원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이야기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 북한은 먼저 북-미 양자회담을 원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관계를 수립해야 북한은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으로 복귀할 수 있다 등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은 북핵 담판의 핵심을 북-미 양자회담에 두고 있다. 북-미 양자회담의 성공이라는 조건 아래서만 6자회담에 돌아온다. 다른 형식의 다자회담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북한의 반응으로 중국은 일단 체면을 세운 듯하다. 원 총리는 국제 사회에 꽤 분명하게 북한의 요구를 드러내줬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는 먼저 미국의 양보가 필요하고, 6자회담의 형식과 참여국은 북한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일본을 6자회담에서 빼자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반면 평양의 시각에서 보면 원 총리의 방문은 별로 성과가 없었다. 김 위원장의 말과 행동에는 새로운 게 없었다. 심지어 ‘흘러간 옛 가락을 새로 읊조렸다’는 평가도 가능할 정도다. 김 위원장의 태도는 결코 화해적인 제스처가 아니었고 속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북-미 간 평화관계 수립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북한이 전에 주장한 것처럼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했다고 시인하거나, 미국이 먼저 핵무기 감축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한반도 평화 기구를 세우거나 미국이 한국에서 철군하라는 것인가. 이를 정의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 게 확실하다. 김 위원장은 너무도 불명확하게, 독선적으로 이야기했다.

필자는 처음부터 원 총리의 평양방문에 기대를 품지 않았다. 중국 경제의 최고 책임자가 수천만 달러의 무상원조라는 ‘촌지’를 들고 평양에 갔다. 원 총리가 빈손으로 귀국하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석유와 식량 등 원조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렇게 ‘보잘것없는 대가’로 중국을 속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중국을 너무 얕본 것이다.

김 위원장이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모든 나라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애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6자회담이 늦춰질수록 유엔결의 1874호로 인한 대북 제재조치도 점점 길어질 것이다. 북한은 더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낮은 자세로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게 유일한 탈출구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핵실험까지 북한이 많은 패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언제나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말로 그렇다면 6자회담 재개가 늦춰져도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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