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합작이란 말 中공산화 연상되니 뺍시다”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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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경제합작부터 시작해 문화-정치로 확대”

■ 1972년 비밀회담 어떤 말이

이후락 南중앙정보부장 “남북화해가 공산주의자 체포만큼 중요해”
김일성 北내각수상 “李부장은 용기있는 사람, 훈장을 주고싶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공개한 외교문서 중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전후해 2차례 만난 김일성 당시 내각 수상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비밀회담 대화록은 그동안 국내 잡지 등에 간헐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처음 영어로 번역됐다.

1972년 5월 4일의 첫 회담에서 김 수상은 통일 3원칙(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강조했고 이 부장은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맞장구쳤다. 이 부장은 박 대통령과 자신이 자주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 수상은 박 대통령과 자신이 공통의 기초를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 부장은 11월 3일 두 번째 회담 말미에 “박 대통령과 김 수상의 철학이 거의 비슷하다. 생각의 주제가 거의 같다”고 말했다.

김 수상은 2차 회담에서 남북은 분단돼서는 안 되며 한쪽이 벗어나면 배신자로 낙인찍힐 것이라면서 남북은 유엔에 따로 가입하지 않을 것이고 남한 단독으로 가입하려 하면 북한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수상은 회담에서 남북 합작사업에 집착을 보였다. 2차 회담에서는 경제합작으로 시작해 문화, 스포츠, 정치합작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부장은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이 부장이 ‘합작’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화록에는 이 부장이 “남한에는 합작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만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평양 주재 동독대사관의 보고서(1972년 11월 9일자)에 따르면 이 부장은 ‘합작’이라는 용어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이뤄졌던 합작과 용어가 같고 결과적으로 중국이 공산화됐기 때문에 합의서에 포함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2차 회담에서 ‘대결’이라는 용어를 두고 논쟁을 하기도 했다. 김 수상이 대결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고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는 것이지만 남북은 누가 이기고 질 수 없는 관계라고 지적하자, 이 부장은 남한에서 대결은 승패와 관련돼 있는 것만이 아니고 최선을 다해 성공적인 결과를 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회담에서 김 수상은 이 부장을 “용기 있는 사람” “진정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시 회담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대목이다. 이 부장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를 체포하는 일을 했다고 소개한 뒤 “남북 화해가 공산주의자 체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 평양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수상은 “이 부장이 조국의 통일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더욱 신뢰한다. 훈장을 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회담 대화록에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동독대사관 보고서에 따르면 이 부장은 김 수상에게 최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양측이 그해 회담을 열자고 하지는 않았으나 장래에 회담이 실현될 것으로 봤으며 최고위급 회담은 박 대통령과 김 수상의 만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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