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평중]영웅의 길: 김대중과 박정희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한 시대가 저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후광(後廣) 김대중의 후광(後光)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빛으로 남을 터이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걸 부식시키지만 어떤 존재는 역사 앞에 의연히 남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다. 한국 민주주의를 육화했으며 엄혹한 냉전시기에 남북공존의 선지자적 비전을 체현한 거인의 삶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DJ의 생애를 평가할 때 역사의 경쟁자이자 최대 정적(政敵)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기치 않을 수 없다. 이들이 한국현대사 최대의 두 거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떠올린다. 영웅사관이란 한계가 있지만 헤겔은 역사의 궁극목표를 자유의 진보로 보고 자유를 실현하는 데 영웅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강력한 열정에 불탄 시저와 나폴레옹이 ‘세계사적 개인’인 이유는 이들의 권력의지가 세계사의 흐름과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저의 꿈은 보편제국 로마로 형상화했고 나폴레옹의 권력욕은 근대민족국가시대를 앞당겼다. 개인적으로는 결함이 많은 그들이었지만 자유의 확대라는 시대적 소명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헤겔의 해석을 한반도에 적용하면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의 궤적은 김대중과 박정희의 성취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냉전이 한창이었던 당시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은 우남은 천부적 정치 감각을 발휘해 대한민국을 세우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뼛속 깊이 봉건적이었던 이승만은 자유의 시대와 어울릴 수 없었다. 백범은 나라를 위한 진정성과 민족을 아끼는 충심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어두운 데다 ‘상인의 현실감각’을 결여한 김구의 길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朴, 유례없는 개발독재 성공

쿠데타로 산업화의 시대정신을 꿰찬 ‘정치군인’ 박정희가 갔던 길은 영욕으로 가득하다. 불굴의 권력의지와 사명감을 결합한 그는 무자비한 철권통치로써 적빈(赤貧)의 한국을 한 세대 만에 산업국가로 변모시킨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장면 정부 때 입안된 걸 훔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청사진과 실행능력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박정희가 제3세계의 무수한 독재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박정희처럼 ‘성공한’ 개발독재의 사례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시민의 땀과 희생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박정희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몫을 수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큰 부작용을 낳았다. 먹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양극화가 천문학적으로 확대되고 부정부패가 구조화되었으며 민주주의가 형해화한 것이다. 생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그의 무단통치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길이 없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세계사는 산업화에 필수적인 원초적 자본 축적이 엄청난 수탈과정을 동반한다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착취와 수탈에 순순히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억압과 탄압이 수반되기 일쑤인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사명을 이룬 영웅의 말로는 비참하다. 시저는 암살당하고 나폴레옹은 유배되었으며 박정희도 부하의 손에 시해당했다. 압축성장이 낳은 시민계층이 민주주의를 요구했을 때 박정희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었다. 개발독재의 성공 자체가 그의 종말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절대빈곤상태에서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걸 감안하면 박정희 시대는 자유의 진보가 통과해야만 했던 형극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화해와 통합의 길 닦은 DJ

김대중이 이끈 민주화와 통일의 시대정신은 박정희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영웅을 알아 본 다른 영웅은 자신의 시대를 완성키 위해 상대방을 모질게 박해했다. 박정희와 그 후계자들은 거듭 후광을 죽이려 했지만 김대중은 불사조처럼 일어나 정권을 잡는다. 이승만이 정치적 경쟁자로 떠오른 조봉암을 사법살인(司法殺人)했지만 김대중은 훨씬 가혹한 역사적 연단(鍊鍛)의 도정에서 살아남아 민주화와 햇볕정책의 꿈을 펼친 것이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위대한 승리였다.

김대중은 이에 머물지 않았다. 자유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초석을 깔고 남북공생의 물꼬를 튼 후광은 전두환을 용서하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결정함으로써 동서화합의 문을 연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가장 큰 피해자가 정치보복의 유혹을 감연히 떨쳐낸 것이다. 한국현대사가 도약하는 불꽃의 순간이었다. 후광이 닦은 화해와 통합의 길이 오늘을 비추는 이유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