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메시지 기대속 연안호 석방 등 추가조치가 관건

  • 입력 2009년 8월 17일 03시 02분


■ 남북관계 어떻게 될까

美기자-유씨 풀어준데 이어 北 ‘봉쇄 탈피’ 적극 행보

한국인 신변보장 제도화 등 南요구 수용땐 관계 급진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현 회장의 만남이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당장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회동을 환영하면서도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들어봐야 한다”고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현 회장의 오찬은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북한 보도에서 김 위원장이 현 회장에게 건넨 발언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두 가지 정도다. 현대그룹의 선임자들(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추억했다는 부분에서는 그들과 자신이 이룬 남북 경협에 대한 애착을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현 회장과 ‘동포애의 정 넘치는 따뜻한 담화를 했다’는 대목은 그가 여전히 1990년대 말부터 구사해 온 ‘우리 민족끼리’라는 대남 전략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정황들은 김 위원장이 억류자 석방을 수단으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동시에 회복하기 위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에 불러들여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한 데 이어 현 회장을 초청해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44)를 석방하는 등 남한 여론에 호소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11일로 예상됐던 현 회장과의 만남을 5일이나 지연시키면서 나름의 극적인 효과도 노렸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2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봉쇄와 제재 국면을 벗어나려는 의도적 행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는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통해 전달한 대남 메시지의 내용과 아직 억류 상태인 ‘800연안호’ 선원의 조기 석방 등 추가적 조치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현 회장이 방북 전 청와대와 교감을 가진 만큼 각종 현안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북측과 현대 측이 원하는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려면 북측이 지난해 7월 11일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 고 박왕자 씨 사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유감을 표시하고 진상 규명에 협조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또 정부가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재개를 비롯한 한국인의 대북 물동량 확대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신변안전 문제를 제도화하자는 정부의 요구에 북측이 응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13일 현 회장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만찬에서 실무적으로 논의됐겠지만 김 위원장이 어디까지 수락했느냐가 남북 관계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남측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개성공단 계약 개정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거두고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인도적 문제 해결까지 약속했을 경우 남북관계는 급진전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약속은 하지 않고 남한의 쌀과 비료의 지원이나 정부 또는 민간 차원의 대규모 경협 투자 등을 요구했다면 남측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결심을 하고 국제사회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는 한 대규모 경제 지원은 어렵다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공통된 견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남한이 북한에 현물과 현금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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