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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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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묘한 시점에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을 제의했다. 갑작스러운 대면 접촉 제의는 지난달 15일 개성공단 관련 법규와 계약이 무효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이를 ‘좋은 소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성공단에 억류된 현대아산 근로자 A 씨 신변 문제는 여전히 의제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北태도 따라 개성공단-억류 南근로자 운명 기로
李대통령 “석방 강력요청”
정부 “문제제기할 것”
北 의제 확정 안해… 임금인상 등 일방통보 가능성
○ 남북한 ‘동상이몽’은 여전한 상태
11일 2차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이미 예고됐다. 북한은 지난달 15일 개성공단 토지임대료와 임금 인상 등 법규와 계약 개정을 일방적으로 시행할 것이며 이에 불응하는 남측 기업은 공단을 떠나도 좋다고 통보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일방적인 개정 내용을 통보할 수도 있고 초안을 내놓으며 협상을 제의할 수도 있다. 북측이 내놓을 요구 수준은 개성공단에서 남측을 쫓아낼 속셈인지, 최대한 경제적 실리를 취하면서 유지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A 씨 문제를 의제로 수용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북한은 ‘개성공업지구와 관련한 실무접촉을 갖자’고 했을 뿐 구체적인 의제를 특정하지 않았다. 과거처럼 ‘그 문제는 우리 관할이 아니니 논의할 수 없다’고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논의해 보자’고 한 것도 아니다. 대북 소식통은 “A 씨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 실무자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만 전했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남측 대표단이 A 씨 문제는 논의도 못한 채 임금인상 등 ‘청구서’만 들고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과연 회담 제의에 응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당국자는 “북한도 우리가 A 씨 문제를 제기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어쨌든 만나서 A 씨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유족들과의 오찬에서 “우리는 북한이 개성공단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강력하게 (A 씨의) 석방을 요청하고 있고, 또 북한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북한의 안팎 상황 판단이 변수
이번 2차 회담은 외견상 4월 21일 1차 회담 때의 상황과 같다. 남북이 서로 다른 주장만 되풀이하다 결렬되고 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북한은 2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후계자 지명을 공식화했다. 이로 인한 안팎의 정세 변화는 북한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선 북한은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운의 ‘업적 쌓기’를 위해 개성공단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할 것이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자본주의 환상 유포의 진원지로 지목돼 온 개성공단을 과감히 포기해 내부 단합을 위한 선전선동에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임금 인상 등을 관철해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어내고 이를 정운의 업적으로 자랑할 수도 있다.
북한은 또 주변 국제정세를 고려해 남북관계의 향배를 결정할 수도 있다. 핵실험 이후 중국과 러시아마저 등을 돌리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또는 남측 기업 추방으로 남북관계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아니면 개성공단 유지와 A 씨 문제 해결의 메시지를 던져 막힌 대외창구를 열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