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조차 비판하는 ‘밀어붙이기 국정’ 어떻기에…

  • 입력 2009년 5월 6일 02시 58분


다양한 처방 섞어 소외계층 껴안아야

통합-소통의 ‘정책 조합’ 필요

《정부가 주요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과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사전에 검토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는 데 대한 비판이 여당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목표로 인해 희생될 수 있는 다른 가치를 보전하거나, 정책 집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처방을 동시에 집행하는 데 필요한 ‘정책조합(policy mix)’의 부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소장 개혁성향 의원 모임인 ‘민본21’이 4일 국정 운영과 관련해 ‘편향된 정책 기조’를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내놓은 오후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방안은 여당의 반대에 부닥쳐 6일 예정된 당정협의마저 미뤄졌다. 곽 위원장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우선 사교육 공급을 억제하겠다는 생각이다. 사교육비라는 급한 불부터 끄면서 공교육 경쟁력 강화라는 중장기 과제를 수행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사교육을 억누르면 그 수요를 어디선가 흡수해야 한다”며 신중론으로 맞서고 있다. 수요 관리와 공급 억제 방안을 동시에 내놔야 시장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는 세제(稅制) 정상화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다. 똑같은 과세 대상(주택)에 서로 다른 세금을 매기는 것은 조세 원리상 맞지 않는다. 더욱이 50%를 넘는 높은 세율은 징세가 아니라 징벌이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조차 이 법안에 등을 돌렸다. 세제 완화에 따른 집값 폭등 우려를 불식할 만한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며 그린벨트 해제, 역세권 고밀도 개발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 현실화된 건 별로 없다. 이에 반해 부동산 세제는 급격히 완화된 게 사실이다. 다주택자 감세(減稅)로 서민이 얻는 이익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였다. 정부는 ‘양도세 부담 감소→매도 물량 증가→집값 안정’이라는 구도를 내세웠지만 감세 논의가 진행되던 3, 4월은 서울 강남 아파트 시장이 크게 요동칠 때였다. 이 때문에 홍준표 원내대표조차 “투기꾼에게 감세 혜택을 준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2년→4년) 문제는 당초 7월 이후 비정규직의 집단 해고 우려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입안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내놓은 ‘100만 명 해고 사태’에 대한 실증 근거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은행이나 대기업은 지금 제도에서도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수 있는데 일괄적으로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연장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처음부터 업종별, 기업규모별로 처방전을 달리하거나 개별 기업의 사정에 맡길 수 있다는 여지를 인정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오해를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신차를 사는 사람에 대한 세금 감면은 소비자에게 무조건 이익이다. 그러나 형평성 시비를 예상하지 못했다. 경차는 이미 세금 감면을 받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얻는 효과가 없다.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유독 자동차산업만 지원을 늘려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교육세 폐지와 수도권 규제완화는 정부가 보완대책을 마련해 놓고도 실기(失期)해 일이 커진 사례다. 목적세 정비를 위해 교육세를 없애는 대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내국세의 20%로 정해 교육세수 부족을 메우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지만 제대로 홍보가 안 돼 교육계와 지방 정부의 반발을 샀다. 정부 여당은 최근 이를 20.5%로 늘려 1400억 원을 더 확보하겠다고 해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수도권 완화는 지방 대책보다 먼저 발표해버려 선후가 뒤바뀌는 혼선을 불렀다. 지방과 수도권 대책을 동시에 추진했으면서도 정작 수도권 대책을 먼저 내놓아 지방의 반발을 자초했다.

일각에서는 정책조합 부재를 놓고 정부의 이념 지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은 “정부가 실용을 주장하며 좌편향 정책을 바로잡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당초 의도한 탈이념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정책 마련과 집행에는 소홀했다”고 말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보수철학은 사회의 안정이 뒷받침돼야 제대로 구현될 수 있고 이를 위해선 계층 통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보수를 표방한 현 정부가 저소득층의 복지와 이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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