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핵실험 카드… 北 ‘빅딜 조급증’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로켓발사 한달 안돼 또 강수

美 ‘핵없는 세상’에 정면도전

6자회담 공전 불가피할 듯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뒤 국제사회와 대결 구도를 굳히고 있는 북한의 행보가 ‘과속’ 단계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29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과 대북 제재기업 리스트 발표를 구실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실험 카드를 던졌다. 과거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으로 인식되던 수순을 한 번에 밟은 셈이다.

1994년 1차, 2002년 2차 북핵 위기 당시엔 미국과 한국이 더 분주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 할 때마다 북한은 한 발 뒤로 물러서 핵시설 가동,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등 단계별 카드를 꺼냈으나 이번엔 뭔가 ‘빅 딜’을 염두에 둔 패키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북한은 2006년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한 뒤 약 3개월 만에 핵실험 실시를 선언하고 며칠 뒤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번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핵실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핵실험 자체가 반드시 북한의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제사회가 대응에 나서고 대북제재가 확산되면 실질적인 압박이 북한 정권에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잡은 2012년이라는 시한에 쫓겨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북한이 뭔가 빨리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며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30일 “북한이 핵실험 조건으로 내세운 유엔 안보리의 사죄 요구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며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각종 도발적인 움직임으로 북-미 협상의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하는 한 6자회담은 공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북한정책특별대표가 5월 첫 주에 한국을 비롯한 6자회담 관련국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뚜렷한 정책방향을 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방북했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북한 설득에 실패했다.

북한의 핵실험 의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월 초 체코에서 외교안보정책 방향으로 제시한 ‘핵 없는 세상’ 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는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고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이 핵무기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게 문제다. 당분간 미국의 ‘의도적인’ 북한 무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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