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자유무역, 실제론 관리무역?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4분


커크 “이대론 안된다” 강경발언 속셈은

론 커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용 불가’ 발언은 미 자동차 업계 회생을 위한 ‘숨고르기 겸 시간 벌기’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 한미 FTA대로라면 미국은 한국산 수입 트럭에 대한 관세(매년 2.5%씩 10년 내 총 25%)를 철폐해야 하는데 미 자동차 업계의 완강한 반대가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자유공정무역(free and fair trade)을 내세우고 있는 미 행정부의 교역정책, 특히 한미 FTA 체결과 관련한 정책기조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 내 사정에 따른 이 같은 요구는 결국 명목만 ‘공정 무역’일 뿐 ‘관리 무역(managed trade)’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자국 산업 보호에 전전긍긍했던 각국은 수입 품목 및 시기, 결제 수단 등의 방법을 통해 타국과의 통상무역을 규제하는 ‘관리 무역’ 정책을 택했었다.

커크 내정자의 이번 발언도 미 의회가 한미 FTA 비준 시기를 최대한 늦춘 뒤 재협상을 거쳐 현 한국산 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조항을 없애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관리 무역의 징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미 경·소형차 시장의 주도권을 한국에 뺏겨버린 이상 마지노선인 트럭 부문마저 양보할 수 없다는 미 자동차 업계의 목소리, 일명 ‘디트로이트 센티먼트(Detroit sentiment)’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디트로이트에 본부를 둔 자동차 전문 컨설팅사 CSM의 마이클 로비넷 부사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GM대우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GM보다는 포드와 크라이슬러가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자동차 업계는 ‘바이 아메리카’ 정서가 가장 강한 국수주의적인 산업이다”고 전했다.

한미 FTA 협상에 주요 멤버로 참여했던 제이 아이전스탯 전 USTR 관세담당국장도 10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FTA 등을 통한 무역 자유화가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미국에 도움이 되겠지만 전례 없는 경제위기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는 위기관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설사 미국과 FTA 체결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국 파나마 콜롬비아 등이 동시에 비준안을 통과시킨다 해도 미국의 강경한 재협상 의지를 꺾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관리 무역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한 언급들이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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