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투표에 100% 찬성…집나간 ‘꽃제비’도 돌아온다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北선거는 두려움 자체… 투표 불참 상상도 못해

선거 안하면 정치범 몰려 가족들까지 초주검이 돼

주민들 출장-여행등 제한 삼촌 사망해도 상가 못가

“일어나라우, 투표! 투표!”

2003년 8월 3일 아침. 북한 평양시 중심가에 살던 탈북자 이모 씨(38)는 인민반장(동장)의 날선 고함소리에 눈을 떴다.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투표 번호는 18번. 재수 없게 앞쪽에 걸려 누구보다 일찍 투표소로 가야 했다.

근처 인민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투표가 시작되는 오전 9시 전부터 긴 줄이 섰다. 이 씨는 간신히 지각을 면해 자신보다 앞 번호인 17명 뒤에 끼어들었다. 순서대로 투표가 시작됐다.

이 씨는 벽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에 인사를 하고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당이 내려 보낸 얼굴도 모르는 대의원을 찬성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투표함이 흑백 2개가 있었다는 얘길 들었지만 지금은 하나뿐이다. 반대하려면 기표소에 들어가 후보자의 이름에 줄을 그어야 한다. 사실상 공개투표인 셈이다.

투표장에 안 나오거나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행위, 심지어 자신의 순서가 지나서야 투표장에 나타나는 것은 정치적 ‘자살’을 의미한다.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심하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간다.

이 씨는 2001년에 열린 지방 대의원 선거 때 감기에 걸려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친구 두 명의 부축을 받아 투표소에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게 투표냐? 소집훈련이지!’

이 씨는 터져 나오는 쓴웃음을 애써 감출 수밖에 없었다. 투표소 안에는 구역 인민위원회와 구역 당,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경찰) 직원들이 나와서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대의원 687명이 선출된 당시 선거 결과에 대해 노동당은 99.9% 투표에 100% 찬성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의 선거는 대외용 요식행위다. 당국이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는 명분 아래 독재체제 유지에 필요한 주민 실태조사를 하는 셈이다.

선거 때만 되면 장마당(시장)을 떠돌던 ‘꽃제비(거지)’도, 중국으로 도망쳤던 이들도 일부 집으로 돌아온다. 투표를 앞두고 당국이 공민증(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사라진 것이 발각되면 그 가족은 초주검이 되기 때문이다.

당국은 100% 투표율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 3개월 전부터 출장과 여행 등 주민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함흥에 살던 탈북자 김모 씨(45)는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신의주에 살던 삼촌이 사망했지만 상가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탈북자 박모 씨(35)는 “유일하게 좋은 점은 선거일이 노는 날이라는 것뿐”이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등 명절과 마찬가지로 한복 입은 여성들이 투표장 근처에서 춤을 춰 그나마 눈요기가 된다”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8일 실시되는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후보자 추천 및 등록이 완료됐다고 5일 보도했다.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대북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은 2일 “당국의 통제가 심해져 중국 국경을 넘나드는 탈북 브로커가 3분의 1로 줄었다”고 전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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