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국회, 답답하고 아프고 부끄러웠다”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 李대통령, 취임후 첫 정치권 비판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국제경멸 받아

한국선 흔한 일이라는 외신기사에 더 충격”

수위조절 주문도 일축… 野선 “국회 무시”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작심한 듯 정례 라디오연설에서 국회 폭력사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국회나 정치권을 비판한 것은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

▽감정을 담은 연설=이 대통령은 국회 폭력사태에 대해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팠다”, “정말 앞이 캄캄했다”,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국회를 비판했다. 특히 국회 폭력사태가 외신에 크게 보도된 것을 아주 부끄러워했다.

그는 “지난주 외국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참으로 놀랐다.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고 서로 뒤엉켜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우리 국회 사진들이 일제히 보도됐다”면서 “사진도 부끄러웠지만 더 충격을 받은 것은 해외토픽감으로 소개되는 그런 폭력이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기사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박형준 대통령홍보기획관은 “대통령 스스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려 했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가 스스로 변화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기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이밍 고려한 듯=이 대통령의 국회 비판 수위가 높은 것을 두고 최근 폭력사태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시국회가 내일(13일)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시기상 맞지 않겠느냐. 흐지부지 지나가면 폭력사태는 재발할 수 있다”면서 “국민의 비판 여론도 비등한 상황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한마디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대국회 비판 연설은 열흘 전에 원고 방향이 잡혔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는 “국회 비판 수위가 너무 높다”며 수위를 조절하자는 의견도 나와 비판 강도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선진화도 어렵다. 이번 기회에 국회도 달라져야 한다”며 연설팀에 강한 메시지를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논평에서 “누가 국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자성해야 할 시점”이라며 “헌법에 명시된 3권 분립 정신을 망각한 국회 간섭과 국회 무시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회 파행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무리하게 쟁점법안을 연말까지 강행처리하겠다고 나섰던 한나라당과 행정부”라며 “염치도, 분별도 없는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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