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북한차용론<北韓借用論>-DJ와 이명박

  • 입력 2009년 1월 11일 20시 15분


이명박 정부를 향해 “북한과 대화하라”고 다그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보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 북한은 과연 무엇일까. 전쟁 방지와 통일을 위해서 끌어안고 가야 할 우리의 반쪽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남북 해빙의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그 신념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더 구조적인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우리 정치사에서 DJ만큼 남북문제에 심혈을 기울여 온 사람도 드물다. 정치 입문기였던 1960년대엔 ‘남북 간 서신 교환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고, 70년대엔 ‘주변 4강에 의한 한반도 평화보장론’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80년대와 90년대엔 ‘3단계 통일론’을 내놓는다. 오늘의 햇볕정책은 그 결산인 셈이다. DJ는 왜 이토록 남북문제에 매달린 것일까.

우리 정치의 영원한 소수(少數)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의 생존방법은 차별화에 있다. 세(勢)의 열세를 딛고 다수(多數)와 경쟁하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 DJ는 남북문제에서 차별화의 출구를 보았던 것이다. 북한이라는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진보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남북문제에 대한 DJ의 신념과 열정까지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가 놓였던 태생적, 정치적 한계까지도 함께 성찰해야만 북한에 대한 그의 집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노력 없이는 DJ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의 劣勢메우려 親北

DJ와 그의 대북정책을 맹종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 체계에 나는 북한차용론(北韓借用論)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북한을 빌려와 쓴다’는 뜻인데 그들이 ‘북한’을 입에 올릴 때 과연 진정으로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고 개선을 바라는지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진보성’을 부각하기 위해 빌려다 쓰는 수단일 뿐 기실 그들은 북한의 참된 변혁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끈은 ‘북한’이다. 누구든 언필칭 ‘진보’를 표방하면 거의 빠짐없이 친북(親北) 또는 종북(從北)의 자세를 견지한다. 민주당 민노당은 물론이고 민노총, 전교조, 그리고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다 그렇다. 임금 투쟁을 하건, 교원평가 반대시위를 하건, 환경운동을 하건, ‘친북’은 자동으로 따라 나온다. 아마 그들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모순인 분단이 해소되어야 노동, 교육, 환경 분야의 하위 모순들도 해소된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맹종적 친북이 분단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이런 친북은 진보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이기도 하다. 북한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김정일 정권의 공포정치와 북녘 동포의 인권참상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니 세상에 그런 진보는 없다. 진보의 생명력은 다양성에 있다. 진정한 진보라면 ‘반핵 친북’ ‘반(反)김정일 친북’도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DJ가 이 정부에 대해 “남북대화를 하라”고 강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북한차용 정책인 그의 햇볕정책은 총체적으로 봐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판명이 났다. 남한의 소수파가 정치적 열세를 메우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북한을 끌어안았고, 그러다 보니 대가(代價)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어서 퍼준 게 햇볕정책이다.

“北韓을 빌려 쓰라”고 강권 말라

그런 정책을 계승하라는 것은 “북한을 빌려 쓰라”고 부추기는 거나 다름없다. 우선 급하다고 또 빌려 써?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는 다수파 정권이다. 소수파인 DJ와는 처지가 다르다. 빌려온 게 없기 때문에 갚을 것도 없다. DJ가 걱정하지 않아도 남북대화는 계속된다. 다수파 정권의 기준과 원칙에 맞게 말이다. 잘되면 햇볕정책보다 더 많은 것을 북한에 주고, 남북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 자꾸 “대화하라”고 재우침으로써 알게 모르게 현직 대통령을 ‘반대화주의자’ ‘대결주의자’로 몰아가고, 그것도 부족해 추종자들에게 “연대해 투쟁하라”고 선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아름답지 않다. 적어도 전직 대통령이라면 현 정부의 정책 변화와 개선 노력을 잠시 지켜보는 인내심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