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7>대북정책 리모델링

  • 입력 2009년 1월 8일 02시 58분


경제지원 엄격히… 물밑접촉 활발히… ‘묘수’ 찾아라

위기관리 태세 북한 급변사태 대비 국제공조체제 마련 필요

개발원조 원칙 北 스스로 체제개혁 나설때만 ‘당근’ 제공해야

북한 바로알기 편향된 대북관 바로잡아 국민적 합의 도출을

《북한은 지난해 금강산에서 비무장 50대 여성 관광객에게 총을 쐈다. 남한에 대해 당국 간 관계에 이어 민간 교류도 제한 또는 차단했다. 남한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을 험악한 말로 비방하고 남한 주민의 반정부 투쟁을 선동했다. 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은 올해도 대대적인 대남 공세를 계속할 것임을 보여준다. 남한을 ‘파쇼’라고 비방하면서 거듭 남한 정부와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이 같은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통일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남북관계를 올바른 궤도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며 “어렵지만 제대로 시작해 튼튼한 남북관계를 쌓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를 ‘남북관계 전환의 해’로 설정하고 4대 과제를 추진키로 했다. △남북 당국 간 대화 추진 △경제교류협력 추진 △인도적 문제의 실질적 해결 노력 △상생·공영 정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 강화가 그것이다.

이런 대북정책 비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 대북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다양한 액션플랜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전문가들이 제시한 5가지 대북정책 리모델링 제안을 소개한다.

①목표는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화,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미래 비전이라는 점에서 유효하며 이 같은 대북정책의 목표를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북한이 경제 분야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하도록 유도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관료 출신인 박찬봉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은 “북한이 중국 정도의 시장화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 전문 인터넷 신문인 데일리엔케이 손광주 편집장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국가적 ‘위기관리’ 태세 확립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이 기정사실로 드러나면서 국가적 위기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향후 북한 권력체제 내부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준비와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최선의 시나리오’ 외에도 북한 급변사태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의 대비태세 못지않게 주변 국가들과의 긴밀한 공조 체제를 갖추기 위한 행동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이 변화를 통해 연착륙하거나 급변사태로 붕괴되는 양극단의 경우와 함께 그 중간 상태로서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상황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였다.

③경제적 지원의 원칙과 기준 수립

일반적으로 적대국 사이의 경제적 거래는 △정치적 거래 △인도적 지원 및 개발원조 △상업적 거래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정치적 거래는 대화나 정치범, 포로 교환 등 상대방의 ‘선행’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다. 인도적 지원은 대가가 없지만 투명한 모니터링이 수반되어야 한다. 개발원조는 상대방이 자활의 의지와 능력을 가졌을 때 가능한 방식이다.

특히 북한이 10·4정상선언 이행을 강조하며 남한에 요구하는 대규모 개발원조는 북한이 낡은 ‘수령경제’와 폐쇄적인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을 스스로 고치고 개혁할 때에야 논의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 개발원조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북한을 ‘스스로 돕는 자’로 만드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해도 수령경제와 같은 낡은 시스템으로는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북한이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북한 바로 알기’로 국민적 합의 확대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 내부의 갈등은 북한의 실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며 “기성세대는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북한의 실체를 올바로 알 수 있도록 북한 바로 알기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아직도 국내 친북세력의 대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상황에서 올바른 통일·안보 교육과 국민적 합의 강화는 남남갈등으로 인한 국력 낭비를 막고 북한이 변화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지나간 낡은 세대’라는 젊은이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들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젊은 교수 인력과 참신한 교재를 개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⑤정부 역할의 공식 비공식적 활용

정부의 역할을 ‘투 트랙(two-track)’으로 나눠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부 간 대화와 협상 등 공개적인 관계인 ‘A트랙’과 함께 남북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물밑 공작 등 비공개 활동을 일컫는 ‘B트랙’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광주 편집장은 “지난 정부가 10년 동안 추진한 햇볕정책은 A트랙에 ‘다걸기(올인)’한 나머지 대인정보(HUMINT) 수집과 대북 공작 기능 등 후자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 공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야 하며 북한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B트랙 활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손 편집장은 강조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北 변화이끌 6자회담 방향은?

“美와 대북문제 공조 강화

오바마 행정부 새 정책에

한국 목소리 반영시켜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한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는 남북관계, 즉 대북 화해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한미동맹도 양국 간 긴밀한 안보협력 강화보다는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보조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외교정책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분명한 정책 목표 아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차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올해가 이런 새로운 출발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지적한다.

▽적극적 대미 외교=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전반적인 대외정책 방향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현안이 다소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 재검토 기간의 공백기가 오히려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책 입안과정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시기를 활용해 미국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전략과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바탕은 한국 정부가 분명한 정책 목표 아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는 작업이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은 대북정책의 종속변수처럼 추진됐다”며 “이젠 북한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끈다는 정책 목표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이 동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대북 화해정책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수 외교 현안에서 상대국에 양보하거나 포기했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차원의 공조=나아가 한국 외교는 미국 차기 행정부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출발점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외교적 지평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행정부가 바뀌면 뒤늦게 인맥 찾기에 나서 인적 접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던 20세기형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논의하는 실용주의 접근을 본격화할 때라는 얘기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면서 동맹국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 조율된 공동 대북정책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한국의 목표를 분명히 전달하고 협력해 나가는 한 차원 높은 공조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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