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한]수전 숄티 수고 이젠 덜어주자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뮤지컬 ‘요덕 스토리’는 탈북자 출신인 정성산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2005년 말 뮤지컬 제작이 세상에 알려진 후 정 감독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극장 측이 대관(貸館)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통보하고 투자를 약속했던 사람도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정부의 ‘압박’이 집요하게 행해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후원금이 몰려들었다. 마침내 2006년 3월 15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요덕 스토리’가 무대에 올랐다.

해외 NGO가 北인권 고발 앞장

당시 ‘요덕 스토리’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2000달러를 보탠 사람이 바로 미국 인권단체 디펜스포럼의 수전 숄티 회장이다. 숄티 회장은 지속적으로 탈북자를 만나 미 의회에서 증언하도록 주선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2003년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미 의회 증언을 성사시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04년에는 워싱턴에서 ‘북한 자유의 날’ 행사를 조직해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다. 2007년에는 중국 체류 탈북 난민의 북송 금지 운동을 펼쳐 탈북자와 북한 인권문제의 국제화에 앞장섰다. 이렇게 볼 때 숄티 회장이 2008년도 서울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무척 잘된 일이다.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북한 인권이 바로 ‘우리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유엔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해외 비정부기구(NGO)가 북한 인권 개선에 중심적 역할을 한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3∼2005년 유엔 인권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과 2005년 이후 유엔총회 결의안에 대해 한 차례 불참하고 세 차례 기권했으며,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 처음으로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2007년 말에는 또다시 기권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정부 관계자는 ‘2007 남북정상선언’에서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문구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2006년 말 우리가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했는데도 2007년 2월 북한이 6자회담에서 ‘북핵 불능화’와 ‘핵시설 신고’를 포함한 ‘2·13합의’ 채택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 논리대로라면 인권결의안 찬성이 남북관계의 악화는 물론이고 북핵 문제의 악화를 초래했어야 했다.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

유엔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EU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EU의 제안으로 제출된 것이다. EU 회원국은 대부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인권 대화를 병행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전략적 접근법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北내정 간섭’ 두려워 말아야

우리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현실감과 진지함을 가지고 접근할 때가 됐다. 인권은 인류 보편의 권리이므로 내정 불간섭 원칙과는 무관하다. 8월 6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 인권 상황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 내 인권 상황 개선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강조했다.

한미 간 공식 문서에 북한 인권 문제가 담긴 것은 처음으로, 무게감이 남다르다. 한미공조와 주변국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통일한국의 비전도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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