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확대 → 군사적 평화’ 낙관 경계해야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13분


한국정치학회가 1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회관에서 6·25전쟁 정전 55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이 행사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통일부가 후원했다. 변영욱 기자
한국정치학회가 1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회관에서 6·25전쟁 정전 55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이 행사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통일부가 후원했다. 변영욱 기자
정전 55주년 학술회의, 한국정치학회 주최

화정평화재단 등 후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자동적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 간 군사적 대결상태를 종식시키고 적대적인 관계를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해 평화를 정착 및 유지하기 위한 원칙, 규칙, 규범 등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고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및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안으로 이미 6자회담, 9·19공동성명(2005년)에서도 언급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올해 4월 19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의 진전이 가시화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한다”고 합의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반도 평화체제는 국제정치와 평화이론의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 각 나라의 이해관계는 무엇인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9개월 만에 열린 10일 한국정치학회(회장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정전체제 55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와 통일부가 후원했고 국내 전문가 12명이 발표했다.

▽평화포럼을 넘어 평화협정으로=9·19공동성명에 따라 6자회담 당사국들은 핵 문제 진전에 따라 별도의 평화회담(한반도 평화포럼)을 열어야 한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은 포럼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세 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 포럼에는 일본과 러시아를 제외한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자가 참여해야 한다. 둘째, 회담 개최 시기는 핵 문제 해결 속도와 연계하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셋째, 대표회담, 참가국 쌍무회담, 상설 실무기구라는 3원적 운영이 필요하다.

백 팀장은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으로 △한반도 평화 관리기구 △국제적 보장체제 △군사분계선 등을 꼽았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6자회담 당사국들의 10·3합의 이행, 북한 핵 폐기(3단계) 착수와 완료 등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구축의 구체적인 과제들을 병행하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조 위원은 “평화체제와는 별도로 동북아 안보포럼도 진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성 충남대 교수는 “각 과제는 서로 연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단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며 “사안들을 연계하고 상호주의를 신축적으로 적용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사안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포괄적 협상 전략’이 유용하다”고 제시했다.

▽적극적 평화이론의 낙관 경계해야=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은 원칙과 규범, 규칙 등을 통해 국제정치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국제정치적 자유주의 또는 합리주의 관점에 속해 있다.

강대국의 권력투쟁이라는 관점으로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현실주의가 평화를 ‘전쟁의 부재’ 또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기간’으로 보는 ‘소극적 평화’라면 자유주의는 행위자들의 의지에 따른 ‘적극적 평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날 발표자들은 국가 간 경제관계가 늘어나면 평화가 온다거나(시장평화 또는 경제평화론) 민주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민주평화론)는 자유주의의 적극적 평화이론이 한반도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북한이 여전히 일당독재 및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지난 10년 동안의 대북 ‘햇볕정책’이 가정했던 것처럼 남북 경제관계의 확대가 북한 체제의 개방과 개혁, 나아가 군사 안보적 평화를 가져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지환 서울대 통일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미국과 한국은 각각 민주평화론, 경제평화론 등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론적 구상을 해 왔으나 모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이상론”이라고 주장했다. 황 위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비핵과 과정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북미 등 관련국 이해관계가 중요=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동북아 각국의 국가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국가 간 합의가 필수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서보혁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한 국가안보나 군사안보 차원에서 평화 개념을 활용해 왔다”며 “그러나 최근 현실 적응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관련국들이 더 많은 변화를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은 “평화체제의 구축은 기존의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해 한미동맹의 의미와 기능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한미연합방위체제의 변화 및 정전체제의 관리 주체인 유엔군사령부의 존폐도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이런 조건하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한국 미국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 내부 온건파(협상파)들의 연대가 중요하고 북한 문제 처리 과정을 6자회담의 제도적 틀과 결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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