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通民封官’ 전술?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올해 李대통령 1500회 거명 연일 비난

금강산관광-경협엔 적극적… 실익 챙겨

최근 남북 당국 간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민간 부문의 교류협력 사업은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다. 북한도 한쪽 손으로는 한국 정부에 삿대질을 하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다른 손은 민간과 맞잡고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

최근 남북관계는 ‘통민봉관’(通民封官·당국을 제치고 민간과만 대화)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한국을 제치고 미국과만 대화)을 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기우임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달 1일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처음 언급하며 대남 비난 전술을 시작했다. 이달 13일까지 북한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 대통령의 이름을 1500회 이상 거명해 비난했다는 것이 통일부의 분석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은 올해 1월 1만7972명에서 4월 3만8105명으로 112%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개성 관광객도 같은 기간 9049명에서 1만536명으로 늘며 총인원 4만 명을 넘어섰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색된 당국 간 관계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 사업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북측도 전처럼 사업에 잘 협조하고 있으며 관광객들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경협도 더 활발해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정부의 대북지원 감소에도 남북교역(상업적 거래와 비상업적 지원을 합한 금액)은 1∼4월 5억6153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2006년 말 1만1160명에서 올해 4월 말 현재 2만6885명으로 140% 늘었다. 근로자 1인당 월 비용(복지비 포함)을 100달러로 계산하면 매월 268만8500달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셈.

사회 문화 교류도 활발하다. 인도협력 사업을 위해 방북한 사람은 1월 185명에서 4월 397명으로 늘었다. 남북의 언론인들은 8일 금강산에서 모임을 갖고 ‘기사 교류’ 등 3개 항의 결의문에 합의했다.

북한의 필요에 따라 당국자 및 준당국자의 방북도 허용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김문수 경기지사가 13일 개성공단을 방문했으며 지난달 29일에는 6자회담에 따른 대북 중유 지원 담당자가 서해 항로를 통해 방북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은 한국의 민간 부문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며 나름대로 한국 측과 대화 및 소통을 하고 있다”며 “이는 북한이 앞으로도 ‘통미봉남’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북한 식량지원 놓고 부처 혼선

외교부 “국제기구 통한 인도적 지원 협의”

통일부 “北요청해야 지원 원칙 변함없어”

한국과 미국이 13일(한국 시간) 워싱턴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협의했다.

미국 측은 종전 계획대로 50만 t의 식량지원 용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마이클 메이건 국가안보회의(NSC) 선임국장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이 지난주 북한을 방문해 식량분배 모니터링 방법에 관해 북측과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외교통상부와 통일부가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 방안을 놓고 혼선을 빚는 양상이다.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현재로서는 북측의 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국제기구를 통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식량난이 심각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과 더불어 국제기구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장관 등 외교부 측의 언급은 지금까지 보여온 ‘원칙’ 때문에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식량지원은 어려운 만큼 WFP를 통한 ‘우회 지원’을 대안으로 검토하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핵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공식화하면서 대규모 식량지원에 착수하자 정부 내에서도 대북 식량지원의 시급성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장관은 지난주에는 “북한의 요청이 먼저 있어야 대북 식량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는 북한의 요청이 있으면 대북 식량지원에 나선다는 기본 방침에 변화가 없다”며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해 WFP 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대북 지원이 지금 현재 검토되거나 추진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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