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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2월 2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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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과 대권을 타협해서 (서로 나눠 가지려) 한다는 것은 과거 발상이고 이제 그런 정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측근인 박희태 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된 ‘당-정-청 일체화’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 당선자가 4개월 전 박 의원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당선자는 8월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전당대회 현장에서 가진 YTN과의 인터뷰에서 대권 당권 분리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내용은 당내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박 의원 등의 발언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효율적인 정치하는 것이 중요”
이 당선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대권과 당권을 타협해서 (서로 나눠 가지려) 한다는 과거 발상적인 논의를 해서는 선거에 (오히려) 불리할 것이다. 이제 그런 정치는 없고 이편 또는 저편으로 나눌 까닭이 없다. 나눠먹기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효율적인 정치를 하는 게 중요하다. (대권 당권을 놓고) 흥정하면 국민이 ‘한나라당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 핵심 측근은 “우리가 대권을 먹을 테니 너희는 당권을 먹으라는 식의 타협은 곤란하다는 취지로 측근들에게도 종종 하는 말”이라며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당-정-청이 하나가 돼도 모자란다는 정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 직후 어설프게 당-청 분리를 시도하다가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지 않았느냐”며 “새 발전 체제를 이루기 위해 축구로 치면 ‘토털 사커’를 하자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명박식 당-정-청 일체론’이 총선 공천에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을 포함하는지는 당시 이 당선자의 발언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 당선자는 당 내홍이 극심했던 11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를 중심으로 당헌 당규가 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 대선과 총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해 내년 총선 공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침묵 속 경계’
당-정-청 일체론을 ‘대통령의 총선 공천권 행사’와 동의어로 해석해 반발했던 박 전 대표 측은 부쩍 말을 아끼고 있다. 이 당선자의 진의가 명쾌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박희태 의원 등의 발언에 대해 ‘공천 학살’이라고 주장하면 오히려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국의 모든 관심이 이 당선자의 향후 정국 구상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공천 보장’을 요구하다가는 오히려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당-정-청 일체론이 결국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의 공천 배제를 위한 것으로 드러나면 집단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게 중론”이라고 전했다.
박희태 의원의 ‘당-정-청 일체론’ 발언은 박 전 대표 주변에서 ‘당권+공천권 50% 확보’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이 당선자 측에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박 전 대표 측 일각에서는 내심 공천 시기가 앞당겨지기를 바라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공천 학살’이 일찍 현실화된다면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로 평가하며 공천 불개입을 선언한 11월 11일 기자회견이 거짓말이 되고 이를 명분 삼아 탈당 등 정치적 활로를 개척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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