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우리가 국민 오도했다는 말인가”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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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통일부 장관 귓속말김만복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선언 이행 종합대책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원장-통일부 장관 귓속말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선언 이행 종합대책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방부는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충격과 당혹감이 역력했다.

NLL의 영토 개념을 부정한 군 통수권자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섣불리 토를 달았다가는 항명(抗命)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NLL에 대한 군 통수권자의 잘못된 인식이 국민을 오도하고 군 장병의 안보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방부, 원론적인 답변만=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출근하면서 노 대통령의 NLL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TV를 보고 알았다”고 답한 뒤 더 언급하지 않았다.

이달 초 남북 정상회담의 공식수행원으로 북한을 다녀온 뒤 연 기자회견에서 ‘북측이 NLL 재설정 주장을 고집해도 해주항 직항을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기존 NLL 인정하에 우리의 통항 절차를 준수한다는 게 선결조건”이라고 말하며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됐다.

김형기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군은 반세기 동안 NLL을 실질적 해상경계선으로 확고히 지켜 왔고, 남북 간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합의될 때까지 계속 지켜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인 발언만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은 NLL을 실질적 해상 경계선이자 영토 개념으로 지켜 온 군의 방침과 정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군 내부의 지배적인 기류다.

군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NLL은 실체가 있는 영토 개념’이라고 발언한 김 장관도 국민을 오도한 셈”이라며 “노 대통령이 단편적 사실만으로 NLL의 안보 영토적 중요성을 간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NLL 협상의 가이드라인 제시=군 내에선 다음 달 평양에서 7년 만에 열리는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NLL 협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북한이 NLL 문제를 제기할 경우 NLL을 ‘영토가 아닌 안보 개념’으로 보고 협상하라는 군 통수권자의 ‘암묵적 주문’이 아니냐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 군부의 협상력에 ‘날개’를 달아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은 그동안 NLL은 외국군사령관(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비법적인 선이라며 무효를 주장해 왔는데, 노 대통령의 발언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군부가 다음 달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최대한 활용해 NLL의 무력화와 분쟁지역화를 위한 공세를 펼치며 남측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주 직항로와 공동어로수역의 설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NLL 준수를 공언한 김 장관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전형적인 무골(武骨)인 김 장관은 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경우라도 NLL은 양보할 수 없다는 소신이 확고해 이번 사태를 둘러싼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군 관계자는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우리 장병들이 목숨 바쳐 NLL을 수호한 것은 그 선이 영해였기 때문”이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일선 장병들의 안보관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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