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의 영토 개념을 부정한 군 통수권자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섣불리 토를 달았다가는 항명(抗命)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NLL에 대한 군 통수권자의 잘못된 인식이 국민을 오도하고 군 장병의 안보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방부, 원론적인 답변만=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출근하면서 노 대통령의 NLL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TV를 보고 알았다”고 답한 뒤 더 언급하지 않았다.
이달 초 남북 정상회담의 공식수행원으로 북한을 다녀온 뒤 연 기자회견에서 ‘북측이 NLL 재설정 주장을 고집해도 해주항 직항을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기존 NLL 인정하에 우리의 통항 절차를 준수한다는 게 선결조건”이라고 말하며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됐다.
김형기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군은 반세기 동안 NLL을 실질적 해상경계선으로 확고히 지켜 왔고, 남북 간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합의될 때까지 계속 지켜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인 발언만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은 NLL을 실질적 해상 경계선이자 영토 개념으로 지켜 온 군의 방침과 정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군 내부의 지배적인 기류다.
군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NLL은 실체가 있는 영토 개념’이라고 발언한 김 장관도 국민을 오도한 셈”이라며 “노 대통령이 단편적 사실만으로 NLL의 안보 영토적 중요성을 간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NLL 협상의 가이드라인 제시=군 내에선 다음 달 평양에서 7년 만에 열리는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NLL 협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북한이 NLL 문제를 제기할 경우 NLL을 ‘영토가 아닌 안보 개념’으로 보고 협상하라는 군 통수권자의 ‘암묵적 주문’이 아니냐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 군부의 협상력에 ‘날개’를 달아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은 그동안 NLL은 외국군사령관(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비법적인 선이라며 무효를 주장해 왔는데, 노 대통령의 발언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군부가 다음 달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최대한 활용해 NLL의 무력화와 분쟁지역화를 위한 공세를 펼치며 남측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주 직항로와 공동어로수역의 설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NLL 준수를 공언한 김 장관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전형적인 무골(武骨)인 김 장관은 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경우라도 NLL은 양보할 수 없다는 소신이 확고해 이번 사태를 둘러싼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군 관계자는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우리 장병들이 목숨 바쳐 NLL을 수호한 것은 그 선이 영해였기 때문”이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일선 장병들의 안보관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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