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위헌 결정난 독소조항 대통령령으로 재추진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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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의원 “언론탄압은 무슨…”24일 오전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언론자유 침해에 항의하는 뜻으로 책상 앞에 ‘언론탄압 분쇄’ 라고 적힌 종이를 붙여놓자 대통합민주신당 정청래 의원(오른쪽)이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며 떼어내라고 항의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정청래 의원 “언론탄압은 무슨…”
24일 오전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언론자유 침해에 항의하는 뜻으로 책상 앞에 ‘언론탄압 분쇄’ 라고 적힌 종이를 붙여놓자 대통합민주신당 정청래 의원(오른쪽)이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며 떼어내라고 항의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은 2004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여론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며 발의한 뒤 2005년 1월 여야 밀실 합의를 통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지난해 7월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으나 ‘시장지배적 사업자’ 차별 등 핵심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는 등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 》

‘지배적’ 문구를 ‘대규모’로 바꿔… 골격은 그대로

정치권 법개정 지지부진 ‘부활 불씨’ 남긴채 표류

언론윤리 조항은 실효성 상실… 억지 입법 증명

언론계에선 신문법이 신문 산업의 발전이나 여론의 다양성 보장보다 정부에 비판적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을 겨냥해 여러 규제 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문의 자율과 편집권을 간섭하는 ‘신문 악법’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신문법은 미디어 산업의 흐름에 맞춰 제정됐어야 했는데 신문 시장에만 집중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조항과 규제가 남발됐다”며 “신문법의 일부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고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명분과 다른 의도가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여권은 위헌 결정을 받은 ‘시장지배적 사업자’ 차별 조항을 대규모 신문 사업자로 이름을 바꾸고 그 기준을 대통령령에서 규정하도록 대체입법을 내는 등 헌재의 결정에 어긋나는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 위헌 결정=헌재는 지난해 6월 신문법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 조항이 신문의 여론 다양성 보장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 수단이 아니며 신문 사업자의 평등권과 신문의 자유를 위배한다고 결정했다.


촬영:이종승기자

이 조항은 1개사 점유율이 30%, 3개사가 60%가 넘으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해 신문발전기금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차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열린우리당은 특정 신문사의 점유율이 높으면 여론 다양성이 침해된다고 주장했으나 여론 시장의 범위를 ‘신문 시장’에만 제한함으로써 비판 언론을 겨냥했다는 의혹이 짙다.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점유율 기준은 1개사 50%, 3개사 75%인데도 신문에만 기준을 강화한 것도 표적 입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조항의 위헌 결정은 이런 지적의 타당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문 시장 규제의 꿈 못 버린 여권=헌재 결정이 나온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권은 개정안을 내놓으며 여전히 신문 시장을 규제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대규모 신문 사업자의 세부 사항을 하위 법령인 대통령령에 위임해 위헌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고 있다. 임의 조항인 독자권익위원회를 강제 조항으로 규정하는 등 신문사에 대한 통제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 조항을 삭제하고 시장점유율 20% 미만의 신문사가 방송사 지분의 10%를 넘지 않게 소유하는 조건으로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여권과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국회문화관광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언론 윤리도 법으로 규제=신문법은 언론의 자율에 맡겨야 할 윤리적 측면까지도 법제화함으로써 무리한 규제 조항을 남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의무화한 조항(4, 5조)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조항은 전두환 정권 때의 언론기본법 조항(3조)과 같다.

이 조항은 신문사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할 공정성과 객관성의 잣대를 강제로 동일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신문사들은 공정성의 법제화 조항에 묶여 고유의 논조와 자유로운 의견을 표출하기보다 닮은꼴 신문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일단 이 조항은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려 판단을 유보했다.

노사 협의를 통해 구성하는 편집위원회 제도도 과도한 입법의 사례로 손꼽힌다. 편집위원회 제도의 법제화는 신문법 제정 논란 당시 편집권 침해라는 지적이 받아들여져 임의조항으로 바뀌었다. 편집위원회는 신문사의 자율에 맡긴다는 뜻이었으나 당시 상당수의 언론사가 편집국장 임면 동의 등을 시행하고 있는 상태여서 굳이 법제화할 필요가 없었다.

언론학계에서는 “이처럼 선언적 조항이나 실효가 없는 조항을 법제화한 것은 이른바 ‘개혁 입법’의 전시 효과를 내기 위해 억지를 쓴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상충하는 언론중재법=언론중재법은 언론 보도의 피해자가 신속하게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취지는 인정받으나 지나치게 언론을 가해자로만 규정하고 있어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조항도 적지 않다.

언론 보도의 피해자가 아닌 제3자(시민단체)가 시정 권고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요청하고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그런 사례다. 이 조항에는 특정 신문에 편향적인 시민단체 등이 시정 권고 요청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

또 언론중재위가 국가적 사회적 법익에 위배되는 보도에 대해 시정 권고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역시 국가적 사회적 법익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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